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메달이미지

자료실

칼 융의 분석적 심리치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78회 작성일 11-05-13 19:50

본문

칼 융의 분석적 심리치유

Jung의 생애

칼 구스타프 융(Cail Gustav Jung) 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자이자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이다.

1875년 스위스 북동부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스위스 박젤 대학 의학부를 나온 뒤 취리히 대학 의학부 정신과의 오에겐 블로일러 교수 문하에 들어갔다. 그 곳의 교수직에 있으면서 단어 연상검사를 연구하여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학적 이해와 이에 대한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 당시 프로이드 학설에 접하여 한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로이드의 초기 학설인 성욕설의 부적절함을 비판하여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융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자기(Self)'와 '자아(Ego)'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는 우리의 생각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세계이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깊이 놓여 있는 세계이다. 또한 그 세계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자아'는 자기의 세계보다 훨씬 작은 세계이다. 그리고 의식과 분별의 세계이다. 자아는 자기를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의식의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그 세계는 의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식으로서의 자아는 무의식으로서의 자기를 지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꿈이다. 꿈은 무의식의 활동이 인식 속에서 지각되는 현상이다. 꿈은 자기와 자아가 만나는 접촉점이다. 그래서 융은 꿈이야말로 현대인에게 있어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꿈의 언어를 잘 이해하는 길이 저 심연에서 고요히 놓여있는 자기를 올바로 이해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융에게 있어서 '자기실현'이라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자아'가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원형의 세계에서 뿜어내는 진실한 목소리를 감지하는 것이 융이 말한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융에게 있어서 삶은 자아가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상징과 신화의 언어를 상실한 현대에서는 자아가 자기를 찾는 여정은 그만큼 힘겨워진다. 왜냐하면 분화된 의식으로서의 자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세계를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징과 신화의 상실은 자기 상실이다. 이러한 상실의 시대를 가로질러 어둠의 세계인 자기의 세계를 빛의 세계인 자아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깨달음의 과정, 즉 '자기실현'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또한, 융은 원형(Archetype),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 개성화(Individuation), 그림자(Shadow),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등의 다양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Ⅱ. 주요개념

분석심리학에서 보는 인간의 본질은 정신의 전체성에 있다. 정신의 전체성은 융에게는 모든 생물학적, 정신적 일어남의 고유한 원동력(spiritus rector)으로 나타난다. 융은 이 신비한 전체성을 '自己(Self)'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분석심리학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은 '자기'에 대한 질문이 된다.

1) 자기 (self)

자기라는 원형은 인생에서 전체성, 중심성, 생의 의미를 경험하는 인간 본유의 정신적 소인의 표현이다. 자기는 우리 내부에 있는 신이다. 고대의 영원한 지혜의 내적 구현으로 나스카피 인디언의 위대한 사람(Great Man)이 바로 자기를 나타낸다. 우리는 불변의 타당성에 관한 문제, 역설, 합리적 해결을 전혀 허용치 않는 모호한 상황 등에 직면할 때가 자기와 접촉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하는 일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나, 자아 적응이 충분하지 않고 자아를 능가하는 더 높은 권위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자기와 접하게 된다. 출생시에는 자아와 자기는 하나이다. 인생의 첫 반생은 이들을 분리하는데 바쳐지며, 이를 위해서는 영웅적 태도와 자아에 대한 의존이 요구된다. 그런 다음, 자아 태도가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분리 과정은 역전되며, 자기 실현을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이 목표가 달성되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 한다.

2) 개인적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

개인적 무의식은 예전에 한번은 의식되었던 것이고, 따라서 비교적 쉽게 의식에 떠오를 수 있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요소들은 정서적 색채를 띤 관념과 행동적 충동으로 정의되는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콤플렉스는 어떤 핵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이러한 핵심은 원형적이다. 따라서 개인적 무의식의 영역 밖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콤플렉스는 껍질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각 개인마다 특정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으며, 그 콤플렉스는 사람들마다 다른 모습을 취할 것이다.

3) 비개인적 집단무의식

무의식의 이 부분은 지각, 정서 및 행동에 대한 생득적인 정신적 소인, 즉 원형을 포함한다. 무의식의 이 층은 직접적으로 의식화되지는 않지만, 신화, 민속 및 예술 등이 지니고 있는 영원한 주제의 현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찰될 수 있다. 어떤 원형은 그 중요성과 빈번함으로 인해 다른 원형보다 더 많이 기록되고 있다. 예컨대, Joseph Campbell(1955)은 영웅 원형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기록하였다. 다른 원형으로는 부활, 대모, 현자, 사기꾼, 신성한 아이, 전체성, 신 등이 있다. 어떤 원형들, 즉 페르조나(persona), 아니무스(animus), 아니마(anima), 자기(self) 등은 성격발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4) 페르조나(persona)

페르조나는 적응의 원형이다. 우리는 실재적인 정신 생활과 외부 세계 사이에 어떤 중재가 필요한데, 이는 우리의 신체에 피부가 필요한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즉 학급의 교사로서, 칵테일 파티에서,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파괴적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상황에 적절한 페르조나를 발달시키지 못한다면, 자신의 역할에 꽉 메여있는 의사나 변호사 또는 목사의 경우에서처럼 페르조나는 경직되어 있을 수 있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페르조나는 유연성이 있다. 즉, 상이한 상황이 지닌 각각의 맥락은 우리의 내부로부터 거기에 적응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특성과 측면들을 유발시킨다. 사람들은 흔히 이러한 현상을 오해하여, 그것을 상황이 달라지면 자신도 달라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5) 그림자(Shadow)

그림자는 우리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모든 것, 즉 우리의 '다른 측면'이다. 그것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경우에서처럼 우리의 의식적인 자아의 보상적 측면이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일 때 질색하게 되는 그런 것들이다. 그림자는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투사로서 경험된다. 여기서 투사는 다른 사람의 감정 혹은 특성에 대한 잘못된 귀인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그 보다는 우리 자신의 거울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매우 화가 나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내부에서 강한 정서를 일으킨다면, 그 사람은 우리 자신의 분노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림자와의 대면은 모든 분석의 필수 조건이며 일반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

그림자는 항상 동성의 인물로 상징화된다. Jung 학파의 사고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그림자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만일 그림자가 수용되고 동화된다면, 그림자는 창의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의식적 경험이 매우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보상적 상으로서의 그림자가 그 상의 모든 긍정적 특성을 포함할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꿈에서 성공적이고 재능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6) 아니무스와 아니마(Animus/Anima)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개념은 그림자나 페르조나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그 개념을 파악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시하고자 하는 바와 같이, 아니마-아니무스 경험은 매우 실제적이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양성적(bisexual)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발달하는 동안, 한 측면이 다른 측면보다 우세해지며 다른 쪽은 열등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남성은 보통 의식상으로는 양이 우세한 원리가 되어, 여성은 음이 우세하게 된다. 무의식에서는 이성적(contrasexual) 측면들이 공존하여, 남성은 무의식적인 음의 측면, 즉 아니마를 가지고, 여성은 무의식적인 양의 측면, 즉 아니무스를 갖는다.

따라서 긍정적 측면에서 여성의 아니무스는 근육과 공격성의 능력, 식별하고 분화하는 능력,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에 대한 책임이 있다. 만일 아니무스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악명 높은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여성은 논쟁적이고, 독단주의, 편견과 선입견에 기초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요약하면, 여성의 아니무스는 세계를 판단하고 경험하는데 사용되는 무의식적 준거체계이며, 그녀의 기대의 총화이다. 아니무스는 여성의 꿈과 환상에서 남편, 아들, 아버지, 연인, 매력적인 왕자, 옆집 남자 등등으로 나타나는 남성상에 의해 상징화된다.

반대로, 남성에서 아니마는 음의 측면을 현시한다. 이것은 남성의 관계를 맺는 능력, 정서성, 사람들 및 관념에 대한 관여, 인생 및 인생 경험에 대한 자발적이고 계획적이지 않은 접근, 관능성(sensuality), 그리고 본능성 등을 설명한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에서 사랑하는 여인, 공주, 여사제, 마녀, 매춘부, 요정 등과 같은 여성상으로 상징화된다. 아니마와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것을 의식으로 통합하지 못한 남자는 메마르고, 추상적이며, 고립되고, 또 어떤 생기있는 요소가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한편, 아니마에 사로잡힌 남자는 기분, 우울, 불안에 따라 흔들리며, 위축되고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자율적 성격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것들을 경험하지만 통제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우리를 우리의 다른 측면으로 이끄는, 집단적 무의식에 대한 안내자이다. 그것들과의 고통스런 조우를 통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그들의 존재양식에 친숙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신비의 대부분은 항상 남아 있다.

7) 자아(ego)

자아는 사람의 경험적 모습이며 의식의 중심이다. 이것은 사고, 관념, 느낌, 기억 및 감각지각의 총화이다.

개인의 인생은 미분화된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 후 씨앗이 식물로 성장하는 것처럼 개인은 충분히 분화하여 균형이 잡히고 통일된 인격으로 발달한다. 완전한 분화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으면 완전한 자기의 상태 혹은 자기 실현의 노력은 타고나는 것이다.

융의 중심적 발달개념은 '개성화'이다. 여러 가지 인격체계는 살아가는 동안 점점 개성화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즉 각각의 체계가 다른 모든 체계에서 분화되어 갈 뿐 아니라 각각의 체계가 그 자체에서도 분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개성화됨에 따라 자아의 의식적 행위의 종류는 크게 달라진다. 개성화된 자아는 여러 가지 세계에 대한 지각을 세밀히 분별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사고 방식의 미묘한 연결끈을 파악하고 또 객관적인 현상의 깊은 의미를 알아낸다. 개성화는 타고난 자율적인 과정이다. 즉, 그것이 행해지는데 있어서 외적 자극이 필요하지 않다. 개인의 인격은 신체가 성장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과 같이 확실히 개성화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절한 경험과 교육이 필요하다. 인격체제는 의식화되어야만 개성화될 수 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는데 있다. 교육(education)은 '잠재해 있는 것을 이끌어낸다'는 뜻인데 교육의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미 맹아의 상태에 있는 것을 개인에게서 끌어내는 것이자, 빈 그릇에 지식을 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발달을 위해서는 인격의 모든 면에 평등하게 개성화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인격의 일면을 소홀히 대하면 이 소홀한 면은 이상한 표현 수단을 찾아내게 된다. 어떤 하나의 체계가 지나치게 팽창하면 인격은 균형을 잃게 된다.

심리 요법이란 바로 개성화의 과정인 것이다.

외향적 사고형의 열등기능

정신의 네 가지 기능과 합리/비합리의 묶음

2) 초월과 통합

인격의 통합은 융 심리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인격이 이처럼 많은 다른 체제에 있고 또 그 중 몇 가지는 서로 대립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격의 모든 면은 '개성화'이고 그 다음으로는 '초월기능'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지배된다. 이 능력은 인격의 대립되는 여러 가지 경향을 모두 통일하여 전체성의 목표로 지향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초월 기능의 목적은 "본래 태아의 배원질 속에 숨어 있던 인격을 그 모든 면에서 실현시키고, 본래 내재해 있던 전체성을 개화시켜 결실을 맺게 하는데 있다"고 융은 말한다. 초월 기능에 의해 통일 또는 자기의 태고유형이 실현된다. 개성화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초월기능도 인간에게 나면서부터 있는 것이다. 완전한 자기인 상태는 인격이 그것을 향해 나가는 이상의 경지이며, 달성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인격의 완전한 개성화와 통합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어떤 요인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융은 유전과 환경을 들었다.

개성화는 개인에 있어서만 작용하고 있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세대에서 세대에 걸쳐서 작용하고 문명인과 미개인 사이에서 작용하고 있다. 융은 현대인은 보다 높은 수준의 개성화를 표현하기 위해 더욱 복잡한 상징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활력 있는 상징이 결여되면 억압된 미발달의 태고유형이 해방되어 원시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이 일어난다.

Ⅳ. 상담사례

Michael은 20대 초반으로 중서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가정의 4형제 중 3남이다. 그는 매력적이고, 똑똑하며, 내성적이고, 자기 주변세계에 아주 민감하다. 기분과 분위기는 그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Michael은 자신의 동성애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왔다. 사회적 비난으로 야기되는 흔한 죄책감에서는 후련하게 벗어났지만(그의 가족과 처가 식구 모두가 그 사정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성애적 세계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었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 혹은 이성애적 세계에서 지속적이고도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치료가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다음은 Michael이 제시한 첫 번째 꿈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 있었어요. 이층에서 마루를 철꺽이며 무서운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가 미쳤지만 사람들이 그를 이층에 사슬로 묶어 두어서 나를 헤칠 수 없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요. 어머니는 테이블 위에 있는 내 손에 자기 손을 다정하게 얹더니 쓰다듬어요."

<토론>

(1) 어머니는 Michael 자신의 여성성과 밀집한 아니마(anima)인 것 같다. 아버지가 사슬에 묶인 것은 자신의 남성성을 사슬로 묶어 둔 것이다.

(2)Michael 자신은 동성애에 대해 죄책감이 없다고 했는데 끔을 통해 아버지 (즉 자신의 남성성)가 지신을 헤칠 의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남성성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3)Michael 자신 속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있는데 어머니만이 Michael에게 큰 영향을 미쳐 여성성은 개발되었으나 남성성은 사슬에 묶인 것처럼 개발되지 못했다.

두 번째 꿈

"아버지, 형, 그리고 내가 바닥에서 수상자전거의 패달을 밟고 있어요. 물결은 거칠고 위협적이지요. 나는 아버지가 내 아기를 상어가 몰려드는 물 속에 넣는 것을 봅니다."

분명히 그의 아니마는 아직도 유아적("아기") 단계에 있다; 즉 그의 감정 측면, 정서적 관계성에 대한 능력은 아직도 미개발 상태이며 깊은 곳의 위험, 즉 퇴행적 충동(상어)에 의해 위협 당하고 있다. 바라건대, 분석관계를 통해서 그는 내적 근원으로부터 남성적인 힘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얼마 후에 그는 세 번째 꿈을 꾸었다.

"나는 험한 산을 오르면서 Y(분석가)를 뒤따릅니다. Y는 내가 신체적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라면서, 나와 동행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합니다."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비웃음 혹은 신뢰의 부족 때문에 자신의 신체적 측면을 억제해 왔던 Michael은 자신의 정신적인 안내자와의 동행에서 그 측면을 재발견한다. 산을 오르는 것은 원형적으로는 개성화로 가는 길로 간주될 수 있으며, 분석가는 자기의 측면을 나타낸다.

다음의 네 번째 꿈에서 상징성이 좀 더 개인적으로 될 때 그 이상의 진전이 이루어진다.

"Keith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과 데이트했던가를 자랑합니다. 그의 허풍 속에서 나는 그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에 대해 아버지처럼 반응합니다. 갑자기 우리는 낭만적으로 키스하지요. 우리는 대등한 사람 이예요. 나는 황홀해 집니다. 어머니는 나와 Keith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려 합니다."

Keith는 Michael의 고등학교 친구인데 그 때 이후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는 Keith를 우상화 했는데, 왜냐하면 자기에게 아주 부족한 남성성측면을 그 친구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Keith는 긍정적인 그림자상으로 간주 될 수 있으며 이 꿈은 자신의 억압됐던 남성성과 Michael이 관계를 가질 가능성을 예시한다. 이런 일이 일어났으므로 우리는 아니마, 즉 여성적 측면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예상 할 수 있게 된다.

Ⅴ. 관련사이트

[<A HREF=Javascript:openLink("http://www.cgjungpage.org/")>◎ The C.G. Jung Page</A>]

[<A HREF=Javascript:openLink("http://www.jung.re.kr")>◎ 한국 융 연구원</A>]

<A HREF=Javascript:openLink("http://neuro.chungbuk.ac.kr/jbhong/newpage145.htm")>◎ 정신의학</A>]

◎ moon's 의학이야기</A>]

참고문헌

1. 노지연 역(1999). (내 생에 처음 만나는)칼 구스타프 융 : 우리 마음의 심층구조. 현실과 미래사


하단로고

CopyrightⒸ국제심리연구원. All rights reserved.

문의전화 카톡아이디 네이버블로그 유튜브 문의전화 카톡아이디 네이버블로그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