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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관계 가족치료 이론의 한국적 적용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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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60회 작성일 11-05-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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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족치료학회지

Korean Journal of Family Therapy, 2000, Vol. 8(2), pp. 137-163

 

대상관계 가족치료 이론의 한국적 적용에 관한 연구

 

Ⅰ. 서론

대표적인 초기 가족치료이론가들 가운데는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체계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개인내적 심리과정의 분석과 개입에 초점을 두는 정신분석 이론을 배격하였다. 하지만 Ackerman을 비롯한 소수의 이론가들은 정신분석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이를 가족치료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다. 가족치료 이론이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그 위상을 굳혀가면서 1970년대부터는 가족치료 진영과 정신역동 진영 사이에 존재하던 극단적인, 상호 배타적 태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1980년대 들어서 정신역동적 접근을 가족치료에 재도입하고자 하는 요구와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Nichols & Schwartz, 1991, 1998).

정신역동적 접근에 대한 관심의 부활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Nichols & Schwartz, 1991). 우선 가족치료 내에서 일어난 변화이다. 가족체계가 가족원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뿐 만 아니라 가족원들의 개인내적 역동이 가족원간의 상호작용이나 가족 전체의 역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었다. 즉, 체계와 개인(the system and the self)에 대한 이해와 개입이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가족치료에 유용하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게 되면서, 정신역동접근과 가족치료 접근을 접목 시키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Nichols 1987). 둘째는 정신분석 이론 내에서의 변화이다. 개인내적 역동에만 초점을 두던 Freud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좀 더 관계중심적인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ies) 과 자기심리학 (self psychology)과 같은 이론들이 소개되어 정신역동적인 관점이 가족치료 이론에 재 도입되는 것을 좀 더 용이하게 했다는 점이다.

대상관계 가족치료는 대상관계 이론을 가족치료에 적용시킨 이론으로서 1970년대부터 Shapiro, Zinner, Jill Scharff, David Scharff, Splipp 등과 같은 이론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Scharff, 1989). 대상관계 이론은 대상관계 가족치료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며 아직 국내에서 잘 소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이해를 돕기 위해 본고에서는 대상관계 가족치료 이론의 논의에 앞서 대상관계 이론의 주요 전제 및 개념들을 고찰하고, 이어서 대상관계 가족치료의 이론과 한국적 적용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Ⅱ. 대상관계 가족치료 이론에 대한 개괄적 고찰

1. 대상관계이론의 기본적 전제

대상관계 이론은 프로이드 이후 정신분석학 테두리 안에서 발전한 몇 가지 이론들 중의 하나로 어느 한 이론가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소위 영국학파로 불리는 Melanie Klein, Ronald Fairbairn, Donald Winnicott, Michael Balint 등 여러 이론가들의 기여로 이루어졌다 (Hamilton, 1988). 대상관계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Freud였지만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이 개념에 다른 의미가 부여되었다. Freud의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인간을 본능적 추동(drive)에 의해 지배되는 자기중심적인 개체로 보고 욕구만족, 충동발산, 긴장이나 불안 감소 등의 개인내적(intrapsychic) 심리과정을 중시한다. 이에 비해 대상관계이론에서는 타자와의 관계 형성 및 심리적인 교류를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로 전제한다. 따라서 타자는 자기의 욕구 충족 수단 이상이며, 자기가 정서적인 유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부각된다. 또한 대상관계에서의 대상이란 단순히 타자 혹은 그에 대한 경험이나 기억만이 아니라 자아구조의 하나의 내적 대상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내적 대상은 과거 대인관계경험을 반영하며 현재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정신분석에서는 자아구조의 발달에 있어서 본능적인 추동의 영향을 강조하고 개인내적 심리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관계인물과의 실제 상호작용은 중요시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외디푸스 갈등 이전의 심리발달에 관심을 두고 생애초기 양육자와의 관계경험이 자아구조의 형성과 병리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생물학적인 요소인 추동에 의한 발달의 중요성은 감소하게 되었고 유아와 부모 관계의 성질과 초기 관계에서의 장애 등이 더욱 강조되었다. 하지만 대상관계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초기 관계 경험 뿐 아니라 추동이 어느 정도 개인의 성격구조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인다(Hamilton, 1988; St. Clair, 1986).

2. Margaret Mahler의 발달이론

Mahler의 동료 연구자들은 언어습득 이전 시기의 정상 유아들과 어머니들 간의 상호작용을 10여년 간 관찰 연구한 것을 토대로 초기 심리발달과 대상관계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Mahler, Pine & Bergman, 1975). 이들은 유아가 어머니와 맺는 관계의 성질을 기준으로 발달단계를 자폐적, 공생적, 분리-개별화 단계로 구분했다. 각 단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김순진, 1998).

태어나서부터 첫 수주동안 신생아는 자기나 대상에 대한 인식없이 신체 감각만을 인식하는 자폐적 상태로 지낸다. 이 단계를 자폐적 단계(Autism)라 하는데 이 기간동안 신생아는 환경과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생리적 긴장을 늦추어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고자 하며 쾌락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그 다음 단계인 공생단계(Symbiosis)는 생후 2개월에서 6개월에 이르며, 이때 유아는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어떤 사람의 존재를 희미하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와 주요 양육자인 어머니를 분리된 존재로 지각하는 것은 아니며,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통해 자기와 양육자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지각하게 된다(Hamilton, 1988). 어머니와의 공생이 충분하면 유아는 마치 자신의 욕구나 바램이 저절로 충족되는 듯한 전능함을 경험하게 되어, 자기와 양육자가 하나의 전능한 체계(an omnipotent system)인 것처럼 지각한다. 어머니와 하나라는 느낌은 유아의 정상적 발달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느낌은 유아가 기본적인 만족감을 얻는 대상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하고, 이런 만족감의 경험이 자기 신뢰 및 자기 존중감 발달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Blank & Blank, 1986: 김순진, 1998에서 재인용).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는 다음 네 개의 하위단계, 즉 분화단계(Differentiation), 연습단계(Practicing), 화해단계(Rapprochment), 정체성 확립과 대상항상성 형성단계(Consolidation of Individuality and the Beginning of Emotion Object Constancy)로 구분되며, 대체로 생후 5-6개월부터 시작되어 두 살 반 혹은 세 살 경까지 지속된다. 이 단계동안 유아는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반응” 과 “분리불안”을 경험한다. 이 단계의 과제는 기본적인 자아정체감과 어머니에 대한 대상항상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첫 하위단계인 분화단계는 대체로 생후 5, 6개월에서 9, 10 개월까지 이며, 유아는 자신의 신체를 자각하고 자기와 어머니,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자신의 내면이나 자기-어머니에만 관심을 기울였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관심을 확장하고, 낯선 사람을 보면 불안 반응을 보이게 된다. 또한 이전보다 좀 더 집요하고 목표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연습단계는 10개월에서 16개월에 이르며, 이때 운동기능의 발달로 유아는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걸어다닐 수 있게 되어 행동방경이 넓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유아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자율능력을 습득하면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거 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어 전능감과 건강한 자기애(narcissism)가 그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유아는 심리적인 기지(home base)를 유지하고 있는 어머니 주변을 돌면서 탐색하고 마치 정서적 재충전(emotional refueling)을 하듯이 탐색을 시작하기 전 반복적으로 어머니에게 되돌아온다.

화해 혹은 재접근 단계는 16-24개월에 해당하며 유아는 이 시기에 일종의 위기를 겪게 된다. 연습단계에서 경험했던 자기과신이나 전능에 대한 환상이 현실에서의 좌절경험으로 인해 점차 도전받고 유아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다. 이와 함께 자기와 어머니가 분리된 존재이며, 어머니가 항상 곁에 있어주고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능력의 한계와 분리에 대한 자각이 증가함에 따라 어머니에 대한 의존이 새롭게 인식된다. 이 단계에서 유아는 의존욕구와 자율욕구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경험하며 이런 갈등은 어머니에게 매달리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행동과 자기 과신 혹은 전능감을 번갈아 보이는 행동으로 표현된다. 또한 유아의 어머니를 전적으로 좋기만(all-good) 하거나 혹은 전적으로 나쁘기만(all-bad)한 대상으로 번갈아 지각한다. 이 단계의 과제는 어머니에 대한 좋거나 나쁜 상(“좋은 어머니”와 “나쁜 어머니”의 표상)을 전체(좋은 대상 일수도 있고 나쁜 대상일 수도 있는 어머니)로 통합시키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김순진, 1998).

마지막 단계인 정체성 확립 및 대상항상성 형성단계는 2세에서 4세 사이에 걸쳐있다. 유아는 어머니의 좋고 나쁜 표상을 통합시키기 시작하고 자신에 대한 좋고 나쁜 표상도 통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는 언어능력이 현저하게 발달하고 정서적 대상항상성(emotional object-constancy), 즉 어머니에 대한 긍정적인 상을 내면에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획득되어, 어머니가 없는 동안 심리적인 위안을 받고 또한 한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진다. 대상항상성은 한 개인의 일생동안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 대상항상성이 있음으로 해서 타인에 대한 지각과 경험이 극단적이거나 부분적이 되지 않고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측면과 관련된 긍정적인 정서를 기억하고 발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Mahler의 발달 이론은 유아의 대상관계가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가를 조명함으로써 유아의 정상적인 심리발달을 이해하는데 뿐만 아니라 유아 자폐증이나 성격장애 등과 같은 정신병리의 초기 원인들을 파악하는 데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김순진, 1998). 또한 초기 관계에서의 부적절한 분리와 개별화가 개인의 심리적 성장 뿐 아니라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한 개념적 틀을 제시한다.

3. 대상관계 이론의 핵심개념

1) 대상관계

대상관계란 생애 초기 주요타자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이 어떤 정신적인 표상(mental representation)과 상호작용의 틀로 내면화된 것을 의미한다. 혹은 개인이 외부 세계 사람들과 고나계를 맺는 기본방식을 결정하는 심리내적 구조로 정의되기도 한다(Horner, 1982). 대상관계는 자기 표상(self-representation)과 대상표상(object-representation)그리고 이 둘을 연결짓는 정서상태로 구성된다(Hamilton, 1988). 표상이란 자기 자신과 대상에 대해 갖는 어떤 정서적인 상(image)을 말하는데 객관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보다는 주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개인이 주관적으로 지각하고 경험한 바를 반영한다. 생애 초기 유아는 어머니로 대표되는 초기 양육자와 상호작용하면서 그 대상과의 경험은 물론이고 그 경험에 수반하는 정서상태까지 내면화하여 대상표상을 형성한다. 대상표상에는 대상에 대한 기억, 지각, 대상의 태도나 행동에 대한 기대, 이와 관련된 감정들과 상황에 대한 표상이 포함된다. 유아의 내면세계에는 대상에 대한 표상 뿐 만 아니라 대상에 반응하고 행동하는 자기에 대한 표상도 존재한다. 이것이 자기표상인데, 양육자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면화된, 자신에 대한 지각, 느낌, 감각, 기억, 의미를 포함한다.

개인의 초기경험은 자기표상과 대상표상의 원자료를 제공한다. 주요타자 들과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에서 유아는 만족스럽고 긍정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불만족스럽고 부정적인 경험도 갖게 된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자신과 대상에 대해 긍정적인 표상은 긍정적인 대로, 부정적인 표상은 부정적인 대로 조직되어, 자신과 대상에 대한 어떤 체계적인 표상으로 유아의 내면에 자리잡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아가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경험하면 표상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들은 긍정적인 측면이 우세한 가운데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형성된다. 주요 타자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적절한 관심과 보살핌은 점차 아이의 내면에 자신과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지각과 정서가 부착된 긍정적인 표상으로 자리잡게 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감으로 발전하다. 또한 양육자와의 만족스러운 관계경험은 유아의 자아기능 발달을 촉진시키고, 양육자와의 보살펴주는 기능은 내면화되어 자아구조로 통합되고 자기 가치감과 안정된 정체감의 근원으로 자리잡게 된다(Hamilton, 1982).

반면에 유아가 충분한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거부당하거나 무시당하거나 혹은 처벌을 받으면서 성장한다면, 유아의 내면에 형성되는 표상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성격을 띤다. 즉, 자신과 대상에 대한 표상이 주로 부정적인 지각과 정서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아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경험 중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각하게 된다. 그 결과 낮은 자존감과 취약한 자아구조를 갖게 되고, 타인에 대해서도 왜곡된 지각과 부정적인 정서를 형성하게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2) 내면화의 과정

유아의 초기 관계 경험은 내면화(internalization)의 과정을 거쳐 유아의 독특한 내적인 대상관계로 형성된다. 내면화는 유아가 환경이나 대상의 특성을 내면으로 받아들여 자기의 특성으로 변형시키는 심리적 기제를 말하며, 내면에서의 자기와 대상의 분별화 정도에 따라서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Hamilton, 1988). 먼저 함입(incorporation)은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내면화로서 분명한 자기-대상 경계가 형성되기 전 대상의 특성이나 대상과의 경험이 자기 내면으로 받아들여져 미분화된 자기-대상 표상으로 사라지는 기제를 가리킨다.

내사(introjecton) 는 자기와 대상이 어느 정도 분화되어, 대상의 행동이나 태도, 기분 혹은 분위기 등이 자기 이미지로 융화되기 보다는 대상 이미지로 보존되는 기제를 말한다. 이때 내사된 대상(an introjected object 혹은 an introject)은 실제 대상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자기의 내면세계에서 정서적인 힘을 행상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생생하게 내면화된 대상을 의미한다.

동일시(identification)는 내사된 대상의 특성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여 자기표상으로 동일시시키는 기제를 말한다. 합임이나 내사보다 좀 더 선택적이고 세련된 내면화 기제라 할 수 있다. 동일시는 초기 발달 과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된다. 새로운 관계와 경험 그리고 대상의 특성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늘 자기와 대상의 상호작용이라는 과정으로 남는다(Hamilton, 1988).

3) 분열(Splitting)과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초기 양육자와의 경험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하지만 유아의 경우, 아직 자아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에 유아가 지각하는 어머니의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 그리고 이러한 측면과 연관된 상충되는 정서를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아는 대상이나 자신의 갈등적인 혹은 이질적인 측면들, 즉 서로 다른 정서가 부여된 측면들을 양분하여 한번에 어느 한 측면만을 의식적인 차원에서 경험하고 다른 측면은 의식에서 배제하고자 하는데 이를 분열이라고 한다. 분열기제가 작동되면 대상이나 자기 자신의 이질적이고 상충되는 측면들이 “좋다(good)" 혹은 ”나쁘다(bad)"로 나뉘고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Hamilton, 1988).

분열의 결과 어머니라는 대상은 유아의 의식세계에서 아직 온전한 대상(whole object)이 아니라 부분대상(part object) 으로 지각되고 경험된다. 즉, 어머니라는 대상의 부정적인 측면, 즉 자기의 욕구를 좌절시키는 측면이 의식적인 차원에서 경험될때는 어머니의 긍정적인 측면은 유아의 의식차원에서 배제되어 마치 어머니가 “온전히 나쁜(all bad)" 사람인 것처럼 지각된다. 분열된 내면 경험이나 지각이 통합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경험들을 기억하고 비교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의 발달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유아가 때때로 경험하는 좌절경험이 자기의 내적 평형을 과도하게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 타자와의 경험이 대체로 긍정적이어야 한다. 초기발달 과정에서 유아가 경험하는 좌절경험이 만성적이고 과도하다든지 혹은 지나치게 높은 불안 수준이 지속되는 경우, 자아의 통합기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상이나 자기의 다양한 특성들이 서로 통합되지 못하고 단편적인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가 수용하기 힘든 어떤 내적 특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투사된 특성대로 느끼거나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말한다. 예컨대, 자신의 의존욕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욕구를 투사하여 이들에게 끊임없이 도움을 제공하거나 자율성의 표현을 좌절시킴으로써 이들 스스로 의존적인 존재로 느끼고 행동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투사되는 부분에는 자기의 특성뿐만 아니라 내면화된 대상관계도 포함된다. 따라서 부모에게서 학대받고 성장한 사람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내면화된 거부적이고 학대하는 대상(a "bad object")을 배우자에게 투사하여 배우자로 하여금 학대하는 대상의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은 무기력한 희생자의 역할을 하여 내적인 대상관계를 현재 관계에서 재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개인의 내면과 대인관계를 잇는 심리적 기제라 할 수 있다(Scharff & Scharff, 1989).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초기관계의 대상표상을 현재의 가족원에서 투사하고 이 과정에서 상대방도 투사에 합류하도록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개인 내적인 심리기제인 투사가 대인관계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즉, 상대방 또한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투사된 대상표상으로 지각하고 경험하며 이 투사된 표상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동일시에 연루되는 것이다(최명민, 1999). 심리적 기제로서의 투사적 동일시는 대상관계 가족치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으로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의 역기능적인 측면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Scharff & Scharff, 1991).

4. 대상관계 가족치료 이론

대상관계이론은 개인심리학으로 출발했지만 관계경험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심리발달을 다루기 때문에 부부관계, 집단, 가족의 이해와 치료에 접목되어 왔다 (Scharff & Scharff, 1991). 앞서 언급한 대상관계 초기 이론가들 가운데 특히 Fairbairn이 제시한 대상관계 개념은 가족 내 정신역동을 이해하는데 개인의 내면 세계와 가족 내 현실적인 생활, 즉 내적인 현실과 외적인 현실 사이의 가교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명민, 1999). Dicks는 Fairbairn의 대상관계 개념을 부부관계 역동에 적용시켰다. 그에 의하면 역기능적인 부부관계에서는 배우자가 서로 무의식적인 욕구 차원에서 상호작용하며 상대방을 통해 분열시킨 자신의 특성이나 대상관계와 재결합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Framo(1992)는 Fairbairn 과 Dicks의 개념을 다세대간 가족역동에 확대, 적용시켜 부부의 원가족 경험이 부부관계와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다른 가족원들과의 관계와 상호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치료적 개입모델을 제시하였다. Scharff와 Scharff(1989, 1991)는 대상관계이론에 가장 충실한 부부치료와 가족치료모델을 제시하였다(Goldenberg & Goldenberg, 1996).

1) 역기능적 가족관계

Skynner(1981)에 의하면 역기능적 가족의 특성은 불분명한 대인간 경계, 가족원들의 혼란된 자아정체감, 현실보다는 환상에서 얻는 만족감, 분리와 상실을 견디지 못한, 관계를 과거 상태로 묶어 두려는 시도, 다른 가족원들을 어떤 고정된 관점에 맞추려고 하는 시도 등이다.

대상관계 가족치료에서는 역기능적 가족관계나 가족원 개인의 문제행동의 원인을 가족원간의 상호작용의 특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가족원의 개인내적 특성이 외적인 가족관계와 상호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둔다. 특히 부모의 병리적인 대상관계와 자아기능의 결함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부적절한 부모역할이 자녀의 심리발달과 가족역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강조되고 다세대간 전수 현상이 다루어진다.

대상관계이론의 관점에서는 초기 관계에서의 부적절한 분리와 개별화 그리고 내사된 부정적인 대상이 지속적인 심리적 부적응을 가져온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안정되고 분별화된 정체감을 발달시키지 못한 아동은 분리불안으로 인해 가족에 대해 지속적이고 강한 정서적 의존상태에 놓이게 된다. 분리불안은 아동의 자아기능 발달을 저해하고 독립적인 사회생활을 발달시켜 나가는 능력을 제한한다. 자녀가 개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부모가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모 자신의 심각한 성격장애로 인해 자녀의 독립욕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 가장 심각한 병리를 유발할 수 있다(Nichols & Schwartz, 1991). 이런 부모들은 자녀가 부모의 기대나 규칙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것도 용납하지 않고 통제하거나 처벌한다. 그 결과 자녀는 자신의 욕구와 부모의 욕구를 분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순응적인 모습을 발달시키게 된다. Winnicott 은 이것을 “거짓 자기(false self)"로 개념화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분히 심리적으로 분화되지 못한 아동이 사춘기에 이르면 자율성 욕구가 발달적으로 증가하면서 가족에 대한 유아적 애착과 자율성 욕구 사이에 심한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부모에 대한 병리적인 의존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고, 부모에게 폭력적으로 반항하는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앞서 기술한 투사적 동일시는 역기능적인 가족 역동을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투사적 동일시는 부모와 자녀관계, 부부관계, 혹은 조부모와 부모 사이에 일어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투사적 동일시의 경우, 부모가 자신 안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특성들이 특정 자녀에게 투사되고 자녀가 이 특성에 맞게 느끼거나 행동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한다.

흔히 가족간의 피상적인 화목이 투사적 동일시에 의해 유지되는데, 이때 어느 한 자녀가 “나쁜 아이” 취급을 당하게 되고, 나머지 가족원들은 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쁜 아이”는 대개의 경우 부모가 자신의 자아에 통합하지 못한, 분열된(split -off) 특성을 반영하며 부모는 의식적으로는 이 자녀를 거부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자녀를 고정된 역할에 묶어둠으로써 자녀의 모습과 동일시한다.

투사되는 특성은 흔히 부모의 원가족 경험에서 미해결된 욕구나 갈등을 반영한다. 부모는 이런 심리내적 갈등을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행동화하는 경향이 있다(Klein, 1990). 따라서 대상관계 가족치료에서는 현재 핵가족의 관계측면 뿐만 아니라 부모의 내면에 대상표상으로 남아있는 이전 세대들의 미해결된 갈등이나 문제도 함께 다루게 된다(Goldenberg & Goldenberg, 1996).

투사적 동일시는 배우자 선택이나 부부관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Dicks, 1967:Scharff, 1989에서 재인용;Zinner, 1989).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투사적 동일시의 경우, 한 배우자가 자신이 통합시키지 못한 특성을 상대방에게 투사시키고 상대방이 여기에 맞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부부가 심리적으로 미분화되고 자아구조가 취약할수록 투사적 동일시가 이들의 상호작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서로에 대한 지각을 왜곡하고 비현실적인 기대에 서로를 묶어둠으로써 역기능적인 부부관계를 유발시킨다.

2) 치료의 목표와 기법

대상관계 가족치료의 목표와 기법을 Scharff 와 Scharff(1991)가 제시한 모델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상관계 가족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가족이 역기능적인 개인내적 역동과 가족역동에 대한 통찰을 얻고 가족원 각자의 애착욕구와 개별화 그리고 심리적 성장에 대한 욕구를 지지해줄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다(Goldenberg & Goldenberg, 1996). 원가족 경험으로부터 미해결된 욕구나 갈등이 많을수록 가족원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경험에서 내사된 대상으로 반응하여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부과된 역할을 강요한다. 따라서 대상관계 가족치료에서 분석단위는 의식적 차원의 가족관계뿐 만 아니라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족관계로 확장된다. 가족원들이 서로에 대한 병리적인 의존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분열이나 투사, 투사적 동일시와 같은 기제에 근거한 상호작용과 그 원인에 대한 통찰을 얻게 하고, 분열되고 억압되거나 다른 가족원에게 투사시킨 부분들을 통합하여 온전한 대상관계(whole object relations)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상관계 가족치료에서는 특정 가족원의 증상이나 문제가 가족체계의 문제를 반영한다고 보지만, 개인의 변화를 위해 체계의 변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체계이론적 관점과는 다른 입장을 갖는다. 즉, 개인의 변화가 때로는 체계의 변화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Goldenberg & Goldenber, 1996).

대상관계 가족치료에서는 치료자가 내담자 가족과 치료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가져야 할 치료적 태도 혹은 기능이 강조된다. 이런 태도 혹은 기능은 받아주기 혹은 버텨주기(“holding") 이라는 개념으로 집약적으로 표현된다. 이 개념은 어머니가 유아의 욕구와 내적 상태를 공감적으로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반응하여 유아로 하여금 이해받고 가치롭게 여겨지고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처럼, 치료자가 내담자 가족의 경험을 심정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며, 이들의 욕구와 내적 상태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수용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말한다(Scharff & Scharff, 1991). 치료자의 받아주기는 언어적인 수단 뿐만 아니라 가족경험의 본질에 대한 치료자의 깊이 있는 이해와 수용적 태도, 가족의 불안이나 갈등을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가족에게 전달된다. 치료자가 가족과의 관계에서 받아주기를 일관되게 보여주면 가족원들도 점차 자신과 다른 가족원들을 좀 더 근원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받아주는 능력(holding capacity)을 키워나갈 수 있다.

대상관계 가족치료의 기법은 다른 이론들과 비교해 볼 때 대체로 비지시적이다. 가족에게 행동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거나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탐색과 통찰을 목적으로 하는 기법들을 주로 사용한다. 주요 기법으로는 해석과 그때 - 거기 경험과 함께 지금-여기의 경험 다루기, 역전이의 활용 등을 들 수 있다.

해석은 내담자 가족과 함께 가족경험과 문제에 대한 이해를 얻어나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기법이며 치료자의 이해를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는 기법이기도 하다(Scharff & Scharff, 1991). 치료자가 가족역동이나 경험에 대해 이해한 바를 해석을 통해 전달하여 가족들이 이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치료자의 관점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해석에는 치료에 대한 가족 전체나 일분의 저항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가족치료에서 나타나는 저항은 행동화 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개인치료와 비교해서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더 빠른 시기에 해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Nichols & Schwartz, 1991).

대상관계 가족치료에서는 과거경험이나 치료장면 밖에서 일어난 일, 즉 그때-거기의 경험을 다루기도 하지만 지금-여기 치료장면에서 가족원들간이나 가족원들과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경험을 중요하게 다룬다. 왜냐하면 가족원들의 대상관계는 지금-여기 치료장면에서 가족원들 사이에서, 특정 가족원과 치료자 사이에서, 그리고 가족 전체와 치료자 사이에서 전이형태로 재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여기를 다루는 기법은 치료자로 하여금 가족원들과 경험을 공유하게 하며 즉시적으로 이를 탐색하고 분석함으로써 더 설득력있는 개입을 할 수 있게 한다.

지금-여기 경험을 다루기에는 치료자의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도 포함된다. 고전적 정신분석에서 역전이는 치료자 자신의 미해결된 문제로 인해 치료장면에서 나타나는 반응으로 극복되어야 할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역전이의 개념을 확장하여 내담자의 투사적 동일시로 유발된 반응을 포함시켰다. 내담자의 투사적 동일시로 유발된 역전이의 경우, 치료자가 자신의 반응을 충분히 자각하고 통찰함으로써 내담자 가족의 경험에 대해 더 깊은 수준에서 공감할 수 있고, 내담자의 내면세계와 역동을 파악하고 치료적으로 다루는데 유용한 단서로 활용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치료자는 특히 치료 초기에 가족과 작업동맹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족원들이 수용하지 않거나 억압했던 부분들을 경험하고 재발견 할 수 있도록 수용적인 치료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한 가족이 공유하는 대상관계와 가족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들을 평가한다. 그리고 가족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하기(“joining the family")위해, 가족의 상호작용을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가족원들이 문제상황이나 가족경험에 대해 각자의 관점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나누게 하고, 가족원 개개인의 대상관계를 파악한 다음 치료자의 관찰 내용과 해석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이 고질적인 역기능적 상호작용 패턴과 방어적인 투사적 동일시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면, 훈습과정을 통해 가족원들이 과거경험으로부터 내면화된 무의식적인 대상관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 더 적합하게 서로에게 반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Goldenberg & Goldenberg, 1996).

Ⅲ. 사례 적용

이 장에서는 청소년 자녀를 둔 가족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대상관계 가족치료의 이해를 돕고 한국적 적용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 시키는데 활용하고자 한다.

1. 의뢰경위

본 사례는 심각한 일탈행동을 보이는 청소년자녀를 둔 어머니가 필자가 근무하는 정부부처 산하 청소년 전문상담 기관에 전화상담한 뒤 전화상담원의 권유로 내방상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내방하여 필자가 접수면접을 하고 그 뒤 사례를 맡아 현재 계속 진행중이다.

2. 문제상황

IP(진아, 가명)는 경기도 소재 특수목적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다. 내방 당시 부모는 진아의 행동이 부모의 통제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느끼고 있었고 수년에 걸쳐 일탈행동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강한 분노와 무력감을 호소했다. 특히 진아 어머니의 경우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밤에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때로는 무작정 잠만 자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 역시 진아 때문에 부인마저 병이 나는 것이 아닌가 몹시 불안해 하면서 “혈압이 오르고” 위장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의 주호소 내용으로는 진아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하고, 매일 학교에 지각하고 자정을 넘어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빈번하고, 가정형편에 맞지 않게 무리한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화가 나거나 요구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히스테리”를 보이는데 괴성을 지르면서 주먹으로 벽을 쳐서 인대가 늘어나는 일도 있었다. 최근 부모를 가장 불안하게 만든 사건은 진아의 가출인데, 학교 시험을 하루 앞두고 집에서 돈을 훔쳐 친구와 함께 가출한 뒤 보름동안 집에 한번도 연락하지 않아 부모가 수소문 끝에 찾아서 집으로 데려왔다. 부모가 볼 때 진아는 귀가 후 뉘우치거나 미안해 하는 기색이 전혀 없고, 오히려 “독립시켜달라” “자취시켜 달라”고 부모를 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귀가 후 밤늦게 까지 남자또래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아져 부모가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진아의 요구나 행동에 대해 아버지는 원칙을 내세우며 냉담하거나 처벌적으로 대하는 편이고, 어머니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요구가 지속되면 마지못해 들어주는 편이었다. 따라서 진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머니에게 집요하게 요구하고 어머니는 남편 몰래 무리해서라도 진아의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었다. 아버지는 진아와 대화도 시도해보고 때려보기도 했지만 어느 방법도 소용이 없어, “차라리 이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를 데리고 산다면 결국 가서는 너나, 나나 둘다 죽는다“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는 극단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 좀 더 진아에 대해 좀 더 수용적이지만 최근에는 ”너무 지쳐서 마음이 냉담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고 했다.

3. 문제발생 과정

진아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진아 어머니는 “이기적이고 까다로운” 시부모와 갈등이 심했다. 게다가 시부모가 진아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 외손자를 돌보면서 진아를 눈에 띄게 차별대우했고, 어머니는 여기에 대한 불만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미움받은 진아가 “미워서” 꼬집거나 심하게 때렸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시부모와의 갈등이 심해져 진아가 18개월 때부터 진아네 가족은 분가했고 진아가 6살 때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진아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 했으며 자기 뜻대로 안되면 소리를 지르고 “대굴대굴 구르는 ” 등 “히스테리”를 보였다. 이 때문에 어른들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애’로 밉보이게 되었다. 어릴 때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유치원 다닐 때 다른 아이드을 꼬집고 때려서 쫓겨나기도 했고 주변 어른들에게도 적개심을 나타냈다. 진아 어머니는 남편 사업 실패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진아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진아가 원하는 것은 “형편이 되는 한” 다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진아의 본격적인 일탈행동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매일 학교에 지각하고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귀가 시간 같은 기본적인 규칙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중학교 2,3학년 동안 어머니가 아예 매일같이 학교 앞에 찾아가서 진아를 데려올 정도였다. 아버지는 진아가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고집하는 것이 너무 못마땅하고 특히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어머니를 못살게 굴고 거칠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진아를 심하게 때렸는데, 얼마 전 때리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진아가 말한 뒤 “정이 떨어져” 그 뒤로는 때리지 않는다고 했다.

4. 가족상황

진아의 아버지(46세)는 1남 5녀중 3째이고 전문대를 졸업했고 영업용 택시를 운전한다.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성격이 “강직하고 성실하며 냉철한” 편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말해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교육자이신 자신의 집안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임가공사업을 하다 10여년 전 실패해서 현재 박봉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 않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며 키우고 싶었으나 진아가 어려서부터 “짜증을 내고 악을 쓰고”힘들게 해서 애정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게 반듯하지 않으면 그 꼴을 못 보는”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한계를 넘어 서면 상종을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진아 어머니 역시 남편이 “바르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지각했다.

진아의 어머니(43세)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결혼하기 전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1남 2녀 중 막내로 본인의 표현으로는 “순진하고 착하게 자랐다.” 생활력이나 사회성은 다소 부족해, 친구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결혼 전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편두통을 앓게 되어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친정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삼남매를 혼자 키웠고, 막내인 진아 어머니에게 특히 허용적이었다고 한다. 진아 어머니는 “응석받이로 자라면서 집안 일을 야무지게 배우지 못했다” 진아아버지에 의하면 진아 어머니는 식사준비, 집안청소나 공과금 납부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여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 떨어져 거의 대부분의 일을 자신이 관여하거나 대신 처리해왔다고 했다. 진아어머니는 결혼 후 “지나치게 깔끔한” 시어머니를 만나 시댁 식구들과 갈등이 많았다. 이때 다시 편두통이 심해져 결혼 전 찾아갔던 신경정신과에세 진료를 받았고 당시 남편이 동행했다. 진아의 문제행동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남편이 이때 일을 진아의 문제와 연관시켜, 어머니의 “정신적 문제가 유전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되자,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진아 어머니는 “우리 남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고 아버지 역시 부인에게 부족한 점이 많지만 순진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감싸줄 수 있다고 하면서 “부부관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진아의 남동생(14세)는 중학교 1학년이며 여러 가지 면에서 누나와 대조적이다. 성격이 “착하고, 순하며 순종적”이어서 어려서부터 부모와 친척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욕구나 감정표현에 있어서 과도하게 통제된 모습을 보인다. 매일 지각하는 누나와 달리 한 시간 전에 학교에 가있어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규칙을 잘 지킨다. 힘든 일에 대해 거의 표현을 하지 않고 필요한 것에 대해서도 조르거나 떼쓰는 일이 없다. 부모와 누나의 갈등에 대해 누나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은 누나처럼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진아의 할아버지(78세)는 고졸 학력으로 교직계에 종사했다. 진아 아버지는 자신의 부모가 “두 분만 아는 스타일”이라고 했고, 진아 어머니는 두 분 다 “까다롭고 이기적인” 성격이라고 표현했다. 진아네가 어렵게 마련한 임대주택에서 진아네 가족과 떨어져 몇 년 간 부인과 함께 생활하다 3년 전 부인을 여의고 혼자 생활하였다. 일년 전 진아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적적하시지 않게 아들을 보내 함께 생활하도록 하였다. 진아 부모는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으로 들어가기를 희망하나 좁은 집에 많은 식구가 들어오면 불편하다고 할아버지가 완강히 거부해 , 불편하지만 할 수 없이 두 집 살림을 계속 하고 있는 실정이다.

5. 사례 개념화

내방 당시 진아의 문제 행동에 대해 진아 부모는 각기 다르게 지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적으로 진아 개인의 문제로 여기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진아가 “기본을 모르고” “미쳤다” “구제불능이다”고 표현할 정도로 진아에 대한 거부적 태도와 절망적인 심정을 표현했다. 반면 어머니는 진아가 어릴 때 식구들에게 “사람을 받지 못하고” 남자 사촌과 남동생 사이에서 심한 차별 대우를 받아서 성격이 비뚤어졌다고 믿고, 진아 문제는 어머니 자신의 책임과 가족 전체의 책임이라고 지각했다. 진아의 문제행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부부가 시각 차이를 보였지만 진아가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였다. 진아 역시 “나만 빼면 우리 가정은 문제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문제로 보는 가족의 관점을 내면화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갖거나 부모의 고통을 공감하지는 못했다.

대상관계 가족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진아 가족의 문제는 우선 가족간 투사적 동일시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집안에는 비뚤어진 데가 없다”며 자신을 비롯해 원가족 원들이 “바르게” 생활해 온 데 대해 아버지는 대단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진아 아버지는 원가족에서 까다롭고 자기중심적인 부모에게 순종적이며 성실한 아들의 역할을 함으로써 인정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근처 도시에서 홀로 지내시는 할아버지가 적적해 하실까봐 자신의 어린 아들이 이 부모집을 떠나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도록 할 만큼 현재도 아들의 도리를 중시하고 아버지에게 헌신적이다.

아버지의 냉철하고 절제되고 순종적인 모습은 진아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특성, 즉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특성들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부녀의 이런 대조적인 모습은 아버지가 원가족 경험을 통해 절제되고 순종적인 태도는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충동적이고 감정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특성은 “나쁜”것으로 여기고 분열시키고 억압하여 이런 특성을 진아에게 투사했다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진아가 기질적으로 유난히 충동성이 높고 욕심이 많고 고집스러워 처음부터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아동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진아의 이런 특성이 부모와 조부모의 부적절한 양육 방식에 의해 유발 혹은 강화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아버지와 진아의 관계에서 투사적 동일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버지는 의식적인 차원에서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비뚤어지지 않고” “반듯한” 태도와 행동에 높은 가치를 둔다. 이 때문에 그렇지 못한 특성들을 억압하고 이를 진아에게 투사하여 진아가 떼를 쓰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기본이 안된 아이”로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거부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진아의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의 경우네는 원가족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면서 자율설이 부족하고 개인내적 갈등이나 대인간의 갈등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신체화 증상을 보이거나 쉽게 감정을 폭발하거나 불안에 휩싸이는 등 심리적 취약성을 보인다. 이런 심리적 취약성은 결혼 후 고부간의 심각한 갈등으로 악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머니의 이런 특성들은 진아와의 관계에서 진아의 표현대로 “잘해줄 때는 잘해주다가 금방 화를 내거라 냉담해지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등 일관성이 결여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진아를 허용적으로 대한 배경에는 “기를 죽이지 않기”위해서 “해달라는 것 다 해줘야 된다”는 신념이 깔려있다. 이것은 원가족에서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형편이 어려워도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 해줘야 한다는 친정모의 신념이 내면화된 것으로 보인다. 즉, 친정모가 그랬듯이 진아어머니 역시 딸에게 집안이나 자신의 “부적절감”을 투사시키고 자녀를 과잉부호함으로써 오히려 이런 부적절한 모습을 이끌어내게 되는데, 이런 투사적 동일시가 세대간에 전수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한편 남편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진아어머니의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은 진아의 반항적이고 고집스러운 모습과 대조적인데, 이 역시 어머니의 투사적 동일시와 연관시켜 개념화해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자신의 순종적인 모습에 가치를 두는 만큼, 억압된 반항적이고 고집스러운 측면이 딸에게 투사되어 딸이 이런 측면을 표출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아부모의 관계에서는 상호적 투사적 동일시의 양상이 나타난다. 어머니는 의존족이고 감정적인 모습을 유지하면서 이성적이고 통제된 부분을 남편에게 투사하고 모든 일을 남편의 판단에 의지하면서 남편이 과도하게 책임지는 역할을 하도록 유도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아버지 또한 자신이 억압한 의존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부인에게 투사하고, 부인 대신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리함으로써 부인이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패턴을 강화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부인이 주부와 어머니로서의 능력이 심각하게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어린 아이와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 천사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부인이 남편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한 어떤 결점도 감싸줄 수있다는 관용적이고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부인의 결점에 대한 이런 관용적인 태도는 진아에 대한 판단적이고 거부적인 태도와 매우 대조적이다. 상호적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진아 부모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각자가 억압한 부분을 상대방을 통해 동일시하고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패턴이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기능적인(functional)것으로 경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부간의 이런 상호적 투사적 동일시는 진아부모가 자신과 서로의 부분적인 특성에만 반응하게 하여 부부의 심리적 성장을 저해하고 자녀와의 관계에서 역기능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사료된다.

진아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근본적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거부하는 존재로, 어머니는 갈등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때로는 허용적으로 때로는 거부적으로 반응하여 일관성이 결여된 존재로 지각되고 경험되었을 것이다. 결국 부모 중 어느 누구도 진아의 특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적절하게 통제적인 양육태도를 보여주지 못했고, 진아는 초기 관계에서 대상항상성과 안정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상이나 경험에 대한 지각이 부분적이고 극단적인 양상을 보인다. 진아가 욕구 좌절 상황에서 “히스테리”를 보이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욕구를 좌절시키는 상대방이 전적으로 나쁜 대상(“all-bad object")으로 지각되고 자신 역시 전적으로 나쁜 존재(”all-bad self")로 지각되어 극도로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진아네 가족은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나 다른 가족원들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다양한 욕구와 특성을 지닌 온전한 대상이 아니라 부분 대상(part object)으로 지각하고 반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의존욕구와 충동성을 억압하고 절제된 측면으로, 어머니는 의존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으로, 진아는 충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측면으로, 동생은 지극히 순종적이고 통제된 측면만으로 가족 관계 안에서 기능하는 것이다.

6. 치료과정 개요

진아네 가족의 경우 접수면접에 부모와 진아 동생이 참여했고, 2회기에는 부모상담으로 진행되었다. 진아는 처음에는 상담실에 오기를 거부했으나 2회기 부모 면담 하루 뒤, PCS전화기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치료자와 “10분만” 얘기한다는 조건으로 내방하게 되었다. 진아는 부모의 예상과는 달리 치료자의 개별적으로 만나자 비교적 솔직하고 거침없이 한 시간 이상 자신의 속마음과 경험을 털어놓았다. 아버지 근무시간과 진아의 일과시간, 그리고 집과 상담실과의 먼 거리 때문에 온 가족이 매번 가족치료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상황에 따라 부모와 만나거나, 진아와 어머니와 만나는 등 참여할 수 있는 가족원들 중심으로 가족치료가 이루어졌다. 현재까지 총 5회기가 진행되었다.

내방 당시 진아의 일탈행동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진아부모는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었다. 따라서 치료목표는 단기적으로 가족 전체의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고 부모의 태도나 행동에 있어서 현재 문제 상황에 기여하는 부분을 파악하고 대안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치료목표는 가족원 각자가 내면에서 분열시켜(split-off)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측면들을 발견하고 자아구조로 통합시키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가족원들이 좀 더 온전한 대상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초반에는 문제상황을 보는 부모의 시각을 이해하고 분노와 좌절, 무기력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수용하면서 이들이 감정을 표출하도록 돕는데 역점을 두었다. 왜냐하면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행동으로 나타나 진아의 문제행동을 강화하고 진아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와 진아가 문제상황에 대해 각자 갖고 있는 관점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지각을 치료장면에서 표현하도록 하면서, 가족원 개개인의 경험을 경청하고 이에 대한 치료자의 공감적 이해를 전달함으로써 가족원 개개인과 라포를 형성하고 가족과의 치료적 동맹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치료자는 한편으로는 가족 개개인의 욕구와 불만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는(holding)역할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탐색과 명료화하기 등을 통해 가족원 각자의 개인내적인 역동과 가족역동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치료과정에서 진아부모는 주로 진아에 대한 불만과 그 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부모가 함께 참여한 회기에는 아버지가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었다. 진아는 자기 통제가 안되어 그때 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게 되고, 공부만을 강조하는 학교분위기와 규칙에 적응하기가 힘들고, 친구들과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안된다고 했다. 또한 부모와의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진짜 내가 필요할 때 엄마는 아빠한테 있다” “답답할 때 엄마를 찾고 싶은데 의지할 사람이 없다” “엄마를 좋아하지만 푸근하지는 않다” “엄마가 이랬다 저랬다”하면 상처를 많이 받게 되어 근래에는 어머니가 잘해줄 때도 마음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진아의 호소는 힘들 때 가서 위로와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든든한 내적 대상으로 부모가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데서 오는 어려움과 이런 대상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다. 부모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진아의 행동이나 태도를 보고 판단하거나 통제하려고 했을 뿐 진아의 내적 경험이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심리적, 실제적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치료과정에서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사람은 어머니였다. 둘째 회기에서 남편이 진아의 문제와 연결시켜 자신의 정신과 치료경험을 거론하자, 지금까지 한번도 남편에게 그렇게 해 본적이 없다면서 처음으로 남편의 이런 생각에 대한 강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2개우러 가량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는 남편과 진아와의 관계에서 “홀로서기 연습”을 자발적으로 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지나의 행동에 대해 “덜 안달하려고” 노력했다. 진아가 저녁 시간에 나가거나 귀가시간이 늦어질 경우, 예전 같으면 불안해서 계속 전화를 하고 찾으러 다녔지만 이제는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안달부리지 않고” 가급적 전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진아가 약속시간보다 늦더라도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진아에게만 “매달렸는데” 이제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그 동안 남편에게 의지하거나 등한시했던 집안일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했다. 진아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옷장을 정리해주고 반찬도 신경써서 만들어주고 집안의 가구들도 재배치하고 대청소하는 등 진아에게 “아무 소리 안하고 보이지 않게 신경 써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어머니가 달라진 태도를 보이자 진아는 예전에는 늦어도 전화를 하지 않다가 이제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자주 전화를 하고, “집이 좋아졌다” 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어머니는 자발적으로 영업직 일자리를 구하고, 예전에는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의존했던 일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면서 조금씩 자신감과 성취감을 경험해나갔다. “남편한테도 좀 독립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보고했다. 완벽하고 깔끔한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남편이 나를 불안해하고” 청소같은 집안일도 “내가 못난게 많으니깐 남편이 해야 왠지 편안했다”고 했다. 그래서 20년 가까이 바꾸지 못했다면서 시부모나 남편이 “한 대 쥐어박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해야 됐는데” “지금 정신 차리고 내가 독립적으로 살아보나 보다”라고 했다. 어머니의 이런 변화는 치료자의 지시나 조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원가족과 시댁, 그리고 핵가족관계에서 과도하게 억압되고 제한되어온 어머니의 자율성 욕구가 치료과정에서 재발견되고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진아는 아직도 화가 나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가정이나 학교생활에서 전반적으로 다소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덜 난폭하고 엄마한테 조르는 게 좀 없어졌고” 귀가시간이 늦어지면 전화하고 예전보다 일찍 들어오는 편이다. 학교도 여전히 지각하지만 빠지지 않고 다니는데, 교사들이 의도적으로 잘하는 점을 칭찬하고 격려햐주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집안이 조용하다” 우선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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