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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원조 - Freud의 정신분석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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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85회 작성일 09-10-2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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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의 원조 - Freud의 정신분석이론


Freud의 정신분석이론은 무의식을 활용하는 NLP와 최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글은 필자(국제심리연구원 원장 구만호 박사)가 오래 전에 쓴 글인데, NLP와 최면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소개한다.


Freud의 精神分析理論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無意識的인 要素임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Freud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신분석학의 초기에 있어서 Freud 이론의 가장 중심과제는 無意識이었다. Freud는 심리학이 하나의 과학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면 인간 행위의 숨은 원인을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력히 믿고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정신분석학의 초기에 무의식의 원인과 동기를 찾는 데 열중했던 것이다.


훗날, 즉 1920년부터 Freud는 점차 자신의 학설을 수정하였는데, 의식-무의식의 구분보다는 원초아-자아-초자아의 세 영역의 구분을 하는 데 더욱 강조점을 두었다. Freud는 인간의 마음을 빙산에 비유하여, 물 표면에 떠 있는 작은 부분을 意識, 물 속에 잠겨 있는 큰 부분을 無意識, 그리고 파도에 의해 물 표면으로 나타났다 잠겼다 하는 부분을 前意識으로 보았다.


Freud는 이 가운데 無意識을 강조하였는데, 무의식의 영역을 인간의 본능, 충동, 원시적 감정 등의 장소로 보았다. 意識(conscious)이란,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는 바로 그 순간, 곧 각성하고 있을 때 알아차릴 수 있는 정신생활의 일부분을 말하며, 대부분의 자아(ego)가 이에 포함된다.


그리고, 前意識(preconscious)은 주의를 집중하고 노력하며, 자극을 받으면 연상되고 기억될 수 있는 정신 생활의 일부분으로서 주로 자아의 영역에 속한다. 예컨대, 어렸을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의 모습이나 그 친구들의 이름을 우리가 평소에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중하여 기억해 내려고 하면 의식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쉽게 의식으로 재현되는 것을 전의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의식은 단지 일시적인 것으로 의식으로부터 잠시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無意識(unconscious)은 은연중에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전적으로 의식밖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 개인이 전혀 知覺하지 못하는 정신영역이다. 그 내용을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으며, 방어기제와 신경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무의식은 주로 원초아(id)와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된다.


후세 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Freud의 정신분석이론은 인간의 성격발달과정을 설명하는 有用한 理論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 Freud 理論의 基本的 假定


Freud의 古典的 精神分析理論의 基本的 假定은 다음과 같다.


첫째, 有機體의 어떤 행동도 결코 우연히 일어날 수 없고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心理的 決定主義를 강조한다.


둘째, 개인 행동의 본능적 측면을 강조한다. Freud에 의하면, 본능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지니고 있는 긴장 체계인 바, 신체의 여러 기관에 의해서 생성된다고 한다. 본능적 행동의 목표는 유기체가 경험하는 긴장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셋째, 인간의 사고, 정서 및 행동에 있어서 무의식적 決定因子를 강조한다. 즉, 우리의 행동의 대부분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충동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넷째, 目標指向的인 動機體系를 강조한다. 즉, 모든 행동들은 나름대로의 목표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2. 性格의 構造


성격은 原初我(id), 自我(ego) 및 超自我(superego)의 세 가지 주요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성격의 이러한 각 영역들은 그것 자체의 기능, 특성, 구성요소, 작용원리, 역동 및 기제들을 가지고 있으나 서로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인간행동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상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행동은 언제나 이 세 체계간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것이며, 다른 두 체계를 떠나서 한 체계가 작용하는 일은 드물다.


1) 原初我(原欲, id) : 성격의 핵심 ; 性과 공격 原初我(id)는 성격의 무의식적인 부분으로 기본 욕구들의 저장고이며 성격의 가장 원시적 체계가 된다. 그 속에서 자아와 초자아가 분화되어 나오는 母體이다. 원초아는 유전되는 것으로 출생 때 이미 존재하며, 본능을 포함하는 모든 심리학적인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정신에너지의 저장소이며 다른 두 체계의 작용이 필요한 모든 힘을 공급한다.


원초아는 긴장으로 인한 힘의 증대를 견뎌내지 못한다. 내적 혹은 외적인 자극에 의해 이 부분의 에너지가 증가되면 긴장이 유발된다. 원초아는 긴장을 즉각 발산하여 유기체를 편안하고 안정된 낮은 에너지 수준으로 돌아가도록 작용한다. 원초아가 조작하는 이 긴장해소의 원리를 快樂의 原理라고 한다. 이 때 원초아는 즉각적인 긴장 감소를 추구하게 되므로 현실성이나 도덕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만족만을 추구하게 된다.


Freud는 원초아의 충동을 주로 性的 本能과 공격적 본능으로 보았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원초아는 두 가지 과정을 통괄하는데 그것은 반사작용과 기초과정(일차적 과정)이다. 반사작용은 재채기나 눈 깜박임과 같은 生來的이고 자동적인 반응들인데 이것들은 즉각적으로 긴장을 해소시킨다. 기초과정은 좀더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내포하는데 그것은 긴장을 제거해 주는 물체의 영상을 떠올리므로서 긴장을 감소시킨다.


예를 들면, 젖먹이 아기는 배가 고플 적마다 음식물을 얻어먹었던 경험이 있다. 음식물을 먹으면서 아기는 그 음식을 보고, 맛을 보며, 냄새를 맡고 느끼게 되는데, 이때 마음속에 인지된 것은 그의 기억계에 저장되게 된다. 이것을 되풀이하다 보면 음식물 그 자체만 보아도 긴장이 감소되게 된다. 만일 아기가 즉각적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면 배고픔의 긴장은 그동안 먹었던 음식물에 대한 기억의 영상을 이룩한다. 다시 말하면 원초아 속에는 배고픔의 긴장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물질의 영상이 존재하고 있다.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물질(음식)에 대한 기억의 영상을 형성하는 현상을「기초과정(일차적 과정)」이라고 한다. 예컨대, 기초과정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물의 心像을 제공한다. 記憶心像의 형태로 원하는 물체를 존재케 하는 이 幻覺的 經驗을 所願充足이라고 한다. 기초과정의 흔한 例는 마치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이 오아시스가 있는 양 착각하는 것과 같다. 정상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기초과정의 例는 밤에 꾸는 꿈이며, Freud는 그것을 소원의 충족이거나 기도된 충족이라고 믿었다.


정신질환자들의 幻覺과 幻影도 기초과정의 例이다. 이러한 소원충족의 현상은 원초아가 알고 있는 유일한 현실인 것이다. 기초과정 자체로는 긴장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의 생각만을 가지고 배가 부를 수도 없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을 상상만 한다고 해서 곧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새롭고 二次的인 심리적 과정이 발전되며, 이것이 생길 때 성격의 둘째 체계인 自我의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Freud는 원초아(Id)야 말로 진정한 정신적 내면적 현실세계라고 한다. 원초아는 쾌락의 추구나 고통의 회피가 그 기능이며, 보채고, 성급하며,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다. 성격의 구성요소 중에 하나의 망나니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2) 自我(ego) : 現實의 檢證者이며 性格의 執行者


유기체가 가진 욕구는 객관적 현실세계와의 적절한 거래를 要하므로 자아가 성립된다. 배고픈 사람은 배고픈 긴장을 제거할 때가지 음식을 찾고 발견하여 먹어야 한다. 이것은 그가 음식의 記憶心像과 外界에 존재하는 음식의 現實的 知覺과를 識別하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이러한 중대한 식별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에서 음식을 찾음으로써 음식에 대한 心像을 실제로 보는 知覺으로 轉換해야 한다. 즉, 인간은 음식에 대한 기억심상을 感覺을 통해 들어오는 음식의 광경이나 냄새와 맞추어 보아야 한다.


原初我와 自我의 근본적 차이는 前者는 마음의 주관적 實在만을 아는 반면, 後者는 마음속의 것과 外界에 있는 것과를 구별하는 것이다. 自我는 現實原理에 따르며, 二次過程에 의해서 작용된다. 현실원리의 목적은 욕구충족을 위해 적합한 대상이 발견될 때까지 긴장해소를 留保하는 데 있다. 2차과정은 現實的인 思考이다.


자아는 2차과정에 의해서 욕구충족을 위한 계획을 짜며, 그 계획이 효과적인지를 알기 위해서 행동으로 검토해 본다. 배고픈 사람은 어디에서 음식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나서 그 곳으로 찾으러 간다. 이것을 現實檢證이라고 한다. 자아는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認知的이며 知的인 모든 機能을 통제한다. 이런 고도의 정신과정은 2차과정의 공로로 이루어진다.


자아는 행동을 統制하며, 반응할 환경의 특징을 선택하고, 어떤 본능을 어떤 방법으로 만족시킬 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性格의 執行者라고 부른다. 이런 중요한 집행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자아는 갈등하는 원초아와 초자아 및 外界의 要求를 통합해야 한다. 그러나 留意할 점은 자아가 원초아의 조직화된 一部이고, 원초아의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推進시키기 위해 존재하며, 원초아에서 완전히 독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自我의 주요역할은 有機體의 本能的인 要求와 주위 環境의 상태와를 調整하는 것이다.



3) 超自我(superego) : 완벽을 추구하는 고등법원 초자아는 社會의 傳統的 價値와 理想의 內的 標本이고, 일반적으로 良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부모가 어린이에게 설명해주고, 상벌체계의 방법으로 어린이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초자아는 自己統制의 형태로 부모의 통제를 내면화한 것으로서 완벽을 지향한다. 초자아는 성격의 도덕적 무기이며 현실보다는 理想 世界를 나타내고, 쾌락보다는 하나의 완전함을 위해 투쟁한다. 그것의 주요관심은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사회기관이 公認하는 도덕적 기준에 맞추어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행위의 內面化된 道德的 裁決者로서의 초자아는 부모가 주는 報償과 處罰에 대한 反應에서 발달된다. 보상을 얻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어린이는 부모가 설정한 노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부모가 자녀의 행동에 대해 부적합하다고 말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초자아의 두 하위체계(良心과 自我理想) 중의 하나인 양심과 결합되는 경향이 있다. 또 행동을 승인해 주고 보상해 주는 것은 초자아의 다른 체계인 自我理想과 결합되는 경향이 있다. 양심은 개인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함으로써 벌을 주고, 자아이상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랑을 느끼게 함으로써 보상을 준다. 초자아의 형성으로 부모의 통제에 自己統制가 代置된다.


초자아의 주요기능은 (1) 원초아의 충동, 특히 性的 또는 공격적인 것을 抑制하는 것인데 이런 것의 표현이 사회에서 가장 비난받기 때문이다. (2) 자아가 현실적인 목표대신에 도덕적인 목표를 가지도록 납득시키고, (3) 완전성을 위해 노력한다. 즉 초자아는 원초아와 자아에 대립하기 쉽고, 세계를 그것 자체의 영상에 맞추어서 개조하려고 한다. 또 자아와는 달리 단순히 본능적 충족을 연기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영구히 방해한다.


* 유의할 점 : 원초아, 자아, 초자아간에 뚜렷한 경계선이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들을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아무 뜻도 없다. 이것을 갈라놓은 것은 단지 설명하기 위해서이고, 전체적 인격 속에서 작용하는 다른 정신과정, 기능, 메커니즘, 역동 등을 설명하는 데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원초아, 자아, 초자아는 보통의 사태에서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相反되는 목적을 가지고 작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아의 行政的 指導아래 하나의 협동체로서 작용한다. 성격은 정상적인 경우 세 개의 분리된 부분들로서보다는 하나의 전체로서 機能한다.



3. 性格의 力動性 : 內的인 鬪爭


Freud는 원초아, 자아, 초자아는 항상 갈등 속에 있으며, 자아는 이것을 조정하려고 한다고 假定하였다. 역동성(dynamics)이란 용어는 긴장을 해소시키려는 원초아의 충동과 그 충동을 억제하거나 저지시키려는 세력들간의 계속적인 상호작용과 충동을 말한다.


Freud는 19세기 과학의 결정론적이고 實證論的인 과학정신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리고 인간유기체를 복잡한 에너지 체계로 생각했고, 유기체는 음식에서 그 에너지를 얻어 순환, 호흡, 근육운동, 知覺, 思考 및 기억과 같은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소모하고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Freud는 호흡이나 순환을 위한 힘을 공급하는 에너지가, 사고와 기억을 위한 힘을 공급하는 에너지와 다른 것으로 생각해야 할 이유를 찾아 볼 수 없었다.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은 에너지는 그것이 작용하는 데 따라 定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그 작용이 思考와 같은 심리적 활동을 이루는 것이라면 이런 형태의 에너지는 정신에너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Freud는 생각했다.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으나, 전체적인 우주체계에서는 소실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정신에너지는 生理的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고 또 반대일 수도 있다.


신체에너지와 정신에너지간의 接點 또는 교량역할을 하는 것은 원초아와 그 본능들이라고 한다.


1) 本能 본능은 흥분의 內的 身體的 근원의 生來的인 心理的 表現, 즉 內的인 신체적 흥분의 心理的 表現으로 定義된다(본능을 신체작용의 필요성과 욕구에 따라 일어나는 정신적 표상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심리적인 표현은 所願(wish)으로 호칭되며, 신체적 흥분은 욕구(need)라고 부른다. 신체적 흥분은 정신적 표상, 즉 所願을 유발한다.


소원들의 집합체를 ‘本能’이라고 한다. 배고픔의 상태를 生理的 용어로는 신체조직에서의 영양결핍상태라고 설명할 수 있는 한편, 심리학적으로는 음식에 대한 所願으로 표현한다. 소원은 행동을 위한 動機로서 작용한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찾는다. 그러므로 본능은 성격의 추진적 요인으로 생각된다. 본능은 행동을 추진시킬 뿐 아니라 행동이 일어날 방향도 결정한다. 즉 본능은 특정한 자극에 대한 그 사람의 感受性을 증진시킴으로써 그 행위에 대한 선택적인 統制를 가한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자극에 더 敏感하며, 性的으로 흥분된 사람은 性的인 자극에 대해서 더 反應할 것이다. 또한 유기체는 外的 세계로부터의 자극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그러나 Freud는 흥분을 일으키는 환경적 요인이 선천적인 본능보다 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Freud는 환경자극을 2차적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떤 상태에서는 그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미숙한 自我가 막대한 量의 긴장을 견딜 능력이 없는 初年期 동안에 과도한 자극을 받으면 Freud의 不安에 대한 理論에서 보게 되듯이 성격은 위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모든 본능들은 성격에 有用한 모든 정신에너지를 장악한다.


원초아는 에너지의 저장고이며, 본능의 居處이기도 하다. 또한 원초아는 성격의 다면적인 작용에 필요한 심리적인 힘을 공급하는 動力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힘은 신체의 신진대사에서 생겨진다. 본능은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源泉(source), 目標(aim), 對象(object), 그리고 强度(충동성, impetus)이다. 원천은 신체적 흥분상태 또는 욕구이다. 목표는 신체적 흥분의 제거에 있다. 예를 들면, 飢 본능의 목표는 영양결핍상태를 제거하는데 있는 것이고, 이것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욕구의 출현과 그 충족사이에 나타나는 모든 활동은 모두 對象이라는 범주 속에 포함된다. 즉 대상이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특정물이나 狀態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필요한 사물이나 상태를 찾는 행동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예컨대 배가 고프다고 할 때, 사람이 최종적으로 먹는다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행동을 취한다. 본능의 强度란 밑에 깔려있는 욕구의 강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힘을 말한다. 예컨대, 영양의 결핍이 점점 커져서 신체적으로 허약점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본능의 强度도 그에 비례해서 커진다.


인간의 행동은 내적 자극에 의해 일어나며, 적절한 활동이 자극을 제거하거나 해소시키면 곧 진정된다. 이것은 본능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退行的(regressive)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본능이 나타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보내기 때문이다. 성격이 되돌아가는 以前의 상태는 하나의 상대적 靜寂이다.


본능은 또한 保存的(conservative)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본능의 목표가 교란된 흥분을 없애므로써 유기체의 평형을 보존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능을 ‘흥분으로 시작해서 靜止로 끝나는 週期를 빈번하게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Freud는 본능의 이런 면을 反復强拍이라고 하였다(반복강박이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용된 방법이 적합치 않을 때 일어나는 지속적인 행동을 기술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어린이는 배가 고플 때 계속해서 손가락을 빨 수도 있다.).


Freud의 본능이론에 의하면 본능의 源泉이 신체적 성숙으로 인해서 변화되거나 消失되지 않는 한, 그 원천과 목표는 일생을 통해서 지속된다고 한다. 새로운 신체적 욕구가 발달하면 그에 따르는 본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과 수단은 그 사람의 일생동안에 상당히 변화될 수 있으며, 또 변화된다.


이 대상선택에 있어서의 변화는 정신적 에너지를 置換(displaceable)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정신적 에너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대상물에 있어서 마침 그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성격 내에서의 장애로 말미암아 그것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에너지는 다른 對象物로 投入될 수 있다. 본능의 에너지가 원래의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에 어느 정도 영구적으로 투입되는 경우 거기서 일어나는 행동을 本能 派生體(instinct derivative)라고 부른다.


어린이가 최초의 性的 對象을 선정하는데 자신의 性器를 만지는 경우, 좀더 害가 적은 손가락 빨기나 발가락 만지기로 대치될 수 있는데, 이러한 代置行爲는 性的 本能의 附隨物이다. 대상물이 바뀌었다고 해도 性的 本能의 목표는 조금도 변화된 것이 아니다. 한 대상으로부터 다른 대상으로 에너지가 轉移되는 것은 性格力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것은 인간본성의 뚜렷한 可塑性과 인간행동의 현저한 可轉性을 말해 준다. 실제로 성인의 모든 흥미, 기호, 취미, 습관, 태도 등은 본래의 본능적인 대상 선택이 轉移된 것으로, 이 전부가 本能 附隨體系인 것이다. Freud의 動機理論은 本能만이 인간행동의 유일한 源泉이라는 가정 하에서 이룩되었다.



2) 本能의 數와 種類


Freud는 본능을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으로 구분하였다. 삶의 본능은 개체의 생존과 종족의 번식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며, 배고픔, 갈증, 性本能 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Freud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삶의 본능은 性本能이며, 초기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이 신체의 어느 부위에나 있는 이러한 욕구에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삶의 본능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형태를 리비도(libido)라고 부른다. Freud는 초기에는 리비도란 말을 단지 性 에너지에 대해서만 썼으나, 그가 후에 動機學說을 수정하고 나서는 리비도의 개념을 넓혀서 삶의 본능 전반에 관계되는 에너지라고 보았다. 죽음의 본능 또는 파괴의 본능이 하는 일은 그 사명을 필연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Freud는 모든 사람이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죽기를 원한다고 가정했다. Freud의 죽음의 욕망에 대한 假定은 Fechner에 의해서 이루어진 恒常性 原理(constancy principle)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원리는 모든 생활과정이 無機的 世界의 안정된 상태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Freud는 생명은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안정된 존재가 방해되었기 때문에 有機物은 정지된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죽음의 사태의 최종 목표는 무생물, 즉 無機物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을 뜻한다.


Freud는 죽음의 본능은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우주적 힘이 작용하여 생명체를 만들어 낼 당시부터 모든 생물 속에 파고들어 온 것이라고 믿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욕망은 恒常性 原理의 심리적 표현이다. 죽음의 본능의 중요한 附隨本能은 공격의 욕구이다. 공격은 자기파괴가 外界의 代替對象物로 돌려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타인과 싸우거나 파괴적인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이 삶의 본능의 세력이나 죽음의 본능을 저지하는 성격내부에서의 다른 장해에 의해서 저지되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은 Freud로 하여금 공격이 性만큼이나 강력한 동기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삶과 죽음의 본능들과 그 부수 본능들은 함께 융합되기도 하고, 서로를 中和시키기도 하고, 또는 서로 대체되기도 한다. 예컨대, 음식을 먹는 것은 배고픔과 음식을 물어뜯고, 씹고 삼킴으로서 만족하는 파괴성의 융합을 나타낸다.


性 本能의 부수 본능인 사랑은 죽음의 본능의 부수 본능인 憎惡를 中和시킬 수 있다. 혹은 사랑은 증오로 대치될 수 있고, 증오는 사랑으로 대치될 수 있다.



3) 정신에너지의 分配와 用途


性格의 力動性은 정신에너지가 원초아, 자아, 초자아에 分配되고 활용되는 방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에너지의 量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세 體系간에는 서로 에너지를 사용하려고 경쟁이 생긴다. 따라서 한 體系가 강해지면 전체적으로 새로운 에너지가 추가되지 않는 한, 다른 體系들은 弱化된다.


원래 원초아가 모든 에너지를 점유하고 있으며, 그것은 기초과정이라는 방법으로 반사작용과 소원성취를 위해 사용한다. 이 두 작용은 모두 원초아를 지배하는 쾌락원리에 직접 봉사하는 것이다. 원초아의 에너지는 매우 유동적인 상태에 있는데, 이것은 어떤 한 가지 활동이나 心像에서 다른 활동이나 심상으로 쉽게 轉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본능적 에너지의 轉移可能性은 원본능이 대상물간의 명확한 식별을 할 수 없는데 基因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對象物들을 같은 것처럼 취급한다. 예컨대 배고픈 아기가 잡히는 것은 무엇이나 입으로 가져가려 하는 것과 같다. 자아는 그 자체로는 힘의 원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초아에게서 힘을 빌려와야 한다.


원초아에서 전환된 에너지로서 자아가 그 과정을 수행하게 하는 것은 同一視(identification)라는 기제에 의해서 이룩된다. 원초아는 주관적 심상과 객관적 현실과를 구별하지 못한다. 정신적 심상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마음의 세계와 바깥 세계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물에 대한 기억이나 개념과, 존재하는 대상물의 감각적 인상이나 知覺과의 차이를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는 二次過程을 통해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과 바깥 세계에 있는 대상물과를 맞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 정신적 표현과 물리적 현실, 즉 마음속에 있는 것을 외부세계에 있는 것과 合致시키는 것을 同一視라고 한다.(同一視와 구별 要) 동일시과정을 통해서 에너지는 원초아의 순수한 想像的인 심리적 과정에서부터 자아의 현실적 논리적 관념형성의 과정으로 옮겨지게 된다. 원초아의 경우에는 정신적 상징과 물리적 대상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반면, 자아는 이 구별이 가능하다.


자아는 그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二次過程이 긴장을 훨씬 더 성공적으로 해소시키기 때문에 자아의 추구가 더욱 확고히 형성된다. 이리하여 자아가 점차적으로 에너지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장악은 상대적이어서 자아가 본능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원초아가 그 힘을 다시 탈취한다.


자아는 2차과정으로 본능을 만족시키는 일 이외에도 다른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충분히 저장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에너지의 일부는 지각, 기억, 판단, 분별, 추상, 일반화 및 추리 등의 고등정신기능을 발달시키는데 사용하며, 또한 일부는 원초아가 충동적으로 또는 비합리적으로 활동하려고 할 때 그것을 억제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억제하는 힘을 추진하는 힘 또는 追求와 대립시켜 排斥(anti-cathexis)이라 부른다. 만약 원초아가 너무 강압적으로 나오면 자아는 원초아에 대항하며 방어기제를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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