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사칼럼

본문 바로가기
메달이미지

구박사칼럼

프로이드(Freud)의 정신분석이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78회 작성일 11-05-13 14:06

본문

  Freud의 정신분석이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無意識的인 要素임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Freud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신분석학의 초기에 있어서 Freud 이론의 가장 중심과제는 無意識이었다. Freud는 심리학이 하나의 과학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면 인간 행위의 숨은 원인을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력히 믿고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정신분석학의 초기에 무의식의 원인과 동기를 찾는 데 열중했던 것이다. 훗날, 즉 1920년부터 Freud는 점차 자신의 학설을 수정하였는데, 의식-무의식의 구분보다는 원초아-자아-초자아의 세 영역의 구분을 하는 데 더욱 강조점을 두었다.

 

Freud는 인간의 마음을 빙산에 비유하여, 물 표면에 떠 있는 작은 부분을 意識, 물 속에 잠겨 있는 큰 부분을 無意識, 그리고 파도에 의해 물 표면으로 나타났다 잠겼다 하는 부분을 前意識으로 보았다. Freud는 이 가운데 無意識을 강조하였는데, 무의식의 영역을 인간의 본능, 충동, 원시적 감정 등의 장소로 보았다.

 

意識(conscious)이란,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는 바로 그 순간, 곧 각성하고 있을 때 알아차릴 수 있는 정신생활의 일부분을 말하며, 대부분의 자아(ego)가 이에 포함된다. 그리고, 前意識(preconscious)은 주의를 집중하고 노력하며, 자극을 받으면 연상되고 기억될 수 있는 정신 생활의 일부분으로서 주로 자아의 영역에 속한다. 예컨대, 어렸을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의 모습이나 그 친구들의 이름을 우리가 평소에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중하여 기억해 내려고 하면 의식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쉽게 의식으로 재현되는 것을 전의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의식은 단지 일시적인 것으로 의식으로부터 잠시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無意識(unconscious)은 은연중에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전적으로 의식밖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 개인이 전혀 知覺하지 못하는 정신영역이다. 그 내용을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으며, 방어기제와 신경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무의식은 주로 원초아(id)와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된다.

많은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Freud의 정신분석이론은 인간의 성격발달과정을 설명하는 有用한 理論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 Freud 理論의 基本的 假定

Freud의 古典的 精神分析理論의 基本的 假定은 다음과 같다.

첫째, 有機體의 어떤 행동도 결코 우연히 일어날 수 없고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心理的 決定主義를 강조한다.

 

둘째, 개인 행동의 본능적 측면을 강조한다. Freud에 의하면, 본능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지니고 있는 긴장 체계인 바, 신체의 여러 기관에 의해서 생성된다고 한다. 본능적 행동의 목표는 유기체가 경험하는 긴장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셋째, 인간의 사고, 정서 및 행동에 있어서 무의식적 決定因子를 강조한다. 즉, 우리의 행동의 대부분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충동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넷째, 目標指向的인 動機體系를 강조한다. 즉, 모든 행동들은 나름대로의 목표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2. 性格의 構造

성격은 原初我(id), 自我(ego) 및 超自我(superego)의 세 가지 주요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성격의 이러한 각 영역들은 그것 자체의 기능, 특성, 구성요소, 작용원리, 역동 및 기제들을 가지고 있으나 서로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인간행동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상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행동은 언제나 이 세 체계간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것이며, 다른 두 체계를 떠나서 한 체계가 작용하는 일은 드물다.

 

1) 原初我(原欲, id) : 성격의 핵심 ; 性과 공격

原初我(id)는 성격의 무의식적인 부분으로 기본 욕구들의 저장고이며 성격의 가장 원시적 체계가 된다. 그 속에서 자아와 초자아가 분화되어 나오는 母體이다. 원초아는 유전되는 것으로 출생 때 이미 존재하며, 본능을 포함하는 모든 심리학적인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정신에너지의 저장소이며 다른 두 체계의 작용이 필요한 모든 힘을 공급한다.

 

원초아는 긴장으로 인한 힘의 증대를 견뎌내지 못한다. 내적 혹은 외적인 자극에 의해 이 부분의 에너지가 증가되면 긴장이 유발된다. 원초아는 긴장을 즉각 발산하여 유기체를 편안하고 안정된 낮은 에너지 수준으로 돌아가도록 작용한다. 원초아가 조작하는 이 긴장해소의 원리를 快樂의 原理라고 한다. 이 때 원초아는 즉각적인 긴장 감소를 추구하게 되므로 현실성이나 도덕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만족만을 추구하게 된다. Freud는 원초아의 충동을 주로 性的 本能과 공격적 본능으로 보았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원초아는 두 가지 과정을 통괄하는데 그것은 반사작용과 기초과정(일차적 과정)이다. 반사작용은 재채기나 눈 깜박임과 같은 生來的이고 자동적인 반응들인데 이것들은 즉각적으로 긴장을 해소시킨다.

 

기초과정은 좀더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내포하는데 그것은 긴장을 제거해 주는 물체의 영상을 떠올리므로서 긴장을 감소시킨다. 예를 들면, 젖먹이 아기는 배가 고플 적마다 음식물을 얻어먹었던 경험이 있다. 음식물을 먹으면서 아기는 그 음식을 보고, 맛을 보며, 냄새를 맡고 느끼게 되는데, 이때 마음속에 인지된 것은 그의 기억계에 저장되게 된다. 이것을 되풀이하다 보면 음식물 그 자체만 보아도 긴장이 감소되게 된다. 만일 아기가 즉각적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면 배고픔의 긴장은 그동안 먹었던 음식물에 대한 기억의 영상을 이룩한다. 다시 말하면 원초아 속에는 배고픔의 긴장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물질의 영상이 존재하고 있다.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물질(음식)에 대한 기억의 영상을 형성하는 현상을「기초과정(일차적 과정)」이라고 한다.

 

예컨대, 기초과정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물의 心像을 제공한다. 記憶心像의 형태로 원하는 물체를 존재케 하는 이 幻覺的 經驗을 所願充足이라고 한다. 기초과정의 흔한 例는 마치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이 오아시스가 있는 양 착각하는 것과 같다. 정상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기초과정의 例는 밤에 꾸는 꿈이며, Freud는 그것을 소원의 충족이거나 기도된 충족이라고 믿었다. 정신질환자들의 幻覺과 幻影도 기초과정의 例이다. 이러한 소원충족의 현상은 원초아가 알고 있는 유일한 현실인 것이다.

 

기초과정 자체로는 긴장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의 생각만을 가지고 배가 부를 수도 없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을 상상만 한다고 해서 곧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새롭고 二次的인 심리적 과정이 발전되며, 이것이 생길 때 성격의 둘째 체계인 自我의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Freud는 원초아(Id)야 말로 진정한 정신적 내면적 현실세계라고 한다. 원초아는 쾌락의 추구나 고통의 회피가 그 기능이며, 보채고, 성급하며,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다. 성격의 구성요소 중에 하나의 망나니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2) 自我(ego) : 現實의 檢證者이며 性格의 執行者

유기체가 가진 욕구는 객관적 현실세계와의 적절한 거래를 要하므로 자아가 성립된다. 배고픈 사람은 배고픈 긴장을 제거할 때가지 음식을 찾고 발견하여 먹어야 한다. 이것은 그가 음식의 記憶心像과 外界에 존재하는 음식의 現實的 知覺과를 識別하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이러한 중대한 식별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에서 음식을 찾음으로써 음식에 대한 心像을 실제로 보는 知覺으로 轉換해야 한다. 즉, 인간은 음식에 대한 기억심상을 感覺을 통해 들어오는 음식의 광경이나 냄새와 맞추어 보아야 한다.

 

原初我와 自我의 근본적 차이는 前者는 마음의 주관적 實在만을 아는 반면, 後者는 마음속의 것과 外界에 있는 것과를 구별하는 것이다. 自我는 現實原理에 따르며, 二次過程에 의해서 작용된다. 현실원리의 목적은 욕구충족을 위해 적합한 대상이 발견될 때까지 긴장해소를 留保하는 데 있다. 2차과정은 現實的인 思考이다. 자아는 2차과정에 의해서 욕구충족을 위한 계획을 짜며, 그 계획이 효과적인지를 알기 위해서 행동으로 검토해 본다. 배고픈 사람은 어디에서 음식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나서 그 곳으로 찾으러 간다. 이것을 現實檢證이라고 한다. 자아는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認知的이며 知的인 모든 機能을 통제한다. 이런 고도의 정신과정은 2차과정의 공로로 이루어진다. 자아는 행동을 統制하며, 반응할 환경의 특징을 선택하고, 어떤 본능을 어떤 방법으로 만족시킬 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性格의 執行者라고 부른다. 이런 중요한 집행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자아는 갈등하는 원초아와 초자아 및 外界의 要求를 통합해야 한다.

 

그러나 留意할 점은 자아가 원초아의 조직화된 一部이고, 원초아의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推進시키기 위해 존재하며, 원초아에서 완전히 독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自我의 주요역할은 有機體의 本能的인 要求와 주위 環境의 상태와를 調整하는 것이다.

 

3) 超自我(superego) : 완벽을 추구하는 고등법원

초자아는 社會의 傳統的 價値와 理想의 內的 標本이고, 일반적으로 良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부모가 어린이에게 설명해주고, 상벌체계의 방법으로 어린이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초자아는 自己統制의 형태로 부모의 통제를 내면화한 것으로서 완벽을 지향한다.

 

초자아는 성격의 도덕적 무기이며 현실보다는 理想 世界를 나타내고, 쾌락보다는 하나의 완전함을 위해 투쟁한다. 그것의 주요관심은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사회기관이 公認하는 도덕적 기준에 맞추어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행위의 內面化된 道德的 裁決者로서의 초자아는 부모가 주는 報償과 處罰에 대한 反應에서 발달된다. 보상을 얻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어린이는 부모가 설정한 노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부모가 자녀의 행동에 대해 부적합하다고 말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초자아의 두 하위체계(良心과 自我理想) 중의 하나인 양심과 결합되는 경향이 있다. 또 행동을 승인해 주고 보상해 주는 것은 초자아의 다른 체계인 自我理想과 결합되는 경향이 있다. 양심은 개인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함으로써 벌을 주고, 자아이상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랑을 느끼게 함으로써 보상을 준다. 초자아의 형성으로 부모의 통제에 自己統制가 代置된다.

 

초자아의 주요기능은 (1) 원초아의 충동, 특히 性的 또는 공격적인 것을 抑制하는 것인데 이런 것의 표현이 사회에서 가장 비난받기 때문이다. (2) 자아가 현실적인 목표대신에 도덕적인 목표를 가지도록 납득시키고, (3) 완전성을 위해 노력한다. 즉 초자아는 원초아와 자아에 대립하기 쉽고, 세계를 그것 자체의 영상에 맞추어서 개조하려고 한다. 또 자아와는 달리 단순히 본능적 충족을 연기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영구히 방해한다.

 

* 유의할 점 : 원초아, 자아, 초자아간에 뚜렷한 경계선이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들을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아무 뜻도 없다. 이것을 갈라놓은 것은 단지 설명하기 위해서이고, 전체적 인격 속에서 작용하는 다른 정신과정, 기능, 메커니즘, 역동 등을 설명하는 데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원초아, 자아, 초자아는 보통의 사태에서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相反되는 목적을 가지고 작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아의 行政的 指導아래 하나의 협동체로서 작용한다. 성격은 정상적인 경우 세 개의 분리된 부분들로서보다는 하나의 전체로서 機能한다.

 

3. 性格의 力動性 : 內的인 鬪爭

Freud는 원초아, 자아, 초자아는 항상 갈등 속에 있으며, 자아는 이것을 조정하려고 한다고 假定하였다. 역동성(dynamics)이란 용어는 긴장을 해소시키려는 원초아의 충동과 그 충동을 억제하거나 저지시키려는 세력들간의 계속적인 상호작용과 충동을 말한다.

 

Freud는 19세기 과학의 결정론적이고 實證論的인 과학정신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리고 인간유기체를 복잡한 에너지 체계로 생각했고, 유기체는 음식에서 그 에너지를 얻어 순환, 호흡, 근육운동, 知覺, 思考 및 기억과 같은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소모하고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Freud는 호흡이나 순환을 위한 힘을 공급하는 에너지가, 사고와 기억을 위한 힘을 공급하는 에너지와 다른 것으로 생각해야 할 이유를 찾아 볼 수 없었다.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은 에너지는 그것이 작용하는 데 따라 定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그 작용이 思考와 같은 심리적 활동을 이루는 것이라면 이런 형태의 에너지는 정신에너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Freud는 생각했다.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으나, 전체적인 우주체계에서는 소실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정신에너지는 生理的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고 또 반대일 수도 있다. 신체에너지와 정신에너지간의 接點 또는 교량역할을 하는 것은 원초아와 그 본능들이라고 한다.

 

1) 本能

본능은 흥분의 內的 身體的 근원의 生來的인 心理的 表現, 즉 內的인 신체적 흥분의 心理的 表現으로 定義된다(본능을 신체작용의 필요성과 욕구에 따라 일어나는 정신적 표상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심리적인 표현은 所願(wish)으로 호칭되며, 신체적 흥분은 욕구(need)라고 부른다.

 

신체적 흥분은 정신적 표상, 즉 所願을 유발한다. 소원들의 집합체를 ‘本能’이라고 한다. 배고픔의 상태를 生理的 용어로는 신체조직에서의 영양결핍상태라고 설명할 수 있는 한편, 심리학적으로는 음식에 대한 所願으로 표현한다. 소원은 행동을 위한 動機로서 작용한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찾는다. 그러므로 본능은 성격의 추진적 요인으로 생각된다. 본능은 행동을 추진시킬 뿐 아니라 행동이 일어날 방향도 결정한다. 즉 본능은 특정한 자극에 대한 그 사람의 感受性을 증진시킴으로써 그 행위에 대한 선택적인 統制를 가한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자극에 더 敏感하며, 性的으로 흥분된 사람은 性的인 자극에 대해서 더 反應할 것이다.

 

또한 유기체는 外的 세계로부터의 자극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그러나 Freud는 흥분을 일으키는 환경적 요인이 선천적인 본능보다 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Freud는 환경자극을 2차적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떤 상태에서는 그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미숙한 自我가 막대한 量의 긴장을 견딜 능력이 없는 初年期 동안에 과도한 자극을 받으면 Freud의 不安에 대한 理論에서 보게 되듯이 성격은 위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모든 본능들은 성격에 有用한 모든 정신에너지를 장악한다. 원초아는 에너지의 저장고이며, 본능의 居處이기도 하다. 또한 원초아는 성격의 다면적인 작용에 필요한 심리적인 힘을 공급하는 動力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힘은 신체의 신진대사에서 생겨진다.

 

본능은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源泉(source), 目標(aim), 對象(object), 그리고 强度(충동성, impetus)이다. 원천은 신체적 흥분상태 또는 욕구이다. 목표는 신체적 흥분의 제거에 있다. 예를 들면, 飢 본능의 목표는 영양결핍상태를 제거하는데 있는 것이고, 이것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욕구의 출현과 그 충족사이에 나타나는 모든 활동은 모두 對象이라는 범주 속에 포함된다. 즉 대상이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특정물이나 狀態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필요한 사물이나 상태를 찾는 행동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예컨대 배가 고프다고 할 때, 사람이 최종적으로 먹는다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행동을 취한다.

 

본능의 强度란 밑에 깔려있는 욕구의 강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힘을 말한다. 예컨대, 영양의 결핍이 점점 커져서 신체적으로 허약점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본능의 强度도 그에 비례해서 커진다.

인간의 행동은 내적 자극에 의해 일어나며, 적절한 활동이 자극을 제거하거나 해소시키면 곧 진정된다. 이것은 본능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退行的(regressive)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본능이 나타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보내기 때문이다. 성격이 되돌아가는 以前의 상태는 하나의 상대적 靜寂이다. 본능은 또한 保存的(conservative)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본능의 목표가 교란된 흥분을 없애므로써 유기체의 평형을 보존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능을 ‘흥분으로 시작해서 靜止로 끝나는 週期를 빈번하게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Freud는 본능의 이런 면을 反復强拍이라고 하였다(반복강박이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용된 방법이 적합치 않을 때 일어나는 지속적인 행동을 기술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어린이는 배가 고플 때 계속해서 손가락을 빨 수도 있다.).

Freud의 본능이론에 의하면 본능의 源泉이 신체적 성숙으로 인해서 변화되거나 消失되지 않는 한, 그 원천과 목표는 일생을 통해서 지속된다고 한다. 새로운 신체적 욕구가 발달하면 그에 따르는 본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과 수단은 그 사람의 일생동안에 상당히 변화될 수 있으며, 또 변화된다. 이 대상선택에 있어서의 변화는 정신적 에너지를 置換(displaceable)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정신적 에너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대상물에 있어서 마침 그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성격 내에서의 장애로 말미암아 그것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에너지는 다른 對象物로 投入될 수 있다.

 

본능의 에너지가 원래의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에 어느 정도 영구적으로 투입되는 경우 거기서 일어나는 행동을 本能 派生體(instinct derivative)라고 부른다. 어린이가 최초의 性的 對象을 선정하는데 자신의 性器를 만지는 경우, 좀더 害가 적은 손가락 빨기나 발가락 만지기로 대치될 수 있는데, 이러한 代置行爲는 性的 本能의 附隨物이다. 대상물이 바뀌었다고 해도 性的 本能의 목표는 조금도 변화된 것이 아니다.

 

한 대상으로부터 다른 대상으로 에너지가 轉移되는 것은 性格力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것은 인간본성의 뚜렷한 可塑性과 인간행동의 현저한 可轉性을 말해 준다. 실제로 성인의 모든 흥미, 기호, 취미, 습관, 태도 등은 본래의 본능적인 대상 선택이 轉移된 것으로, 이 전부가 本能 附隨體系인 것이다. Freud의 動機理論은 本能만이 인간행동의 유일한 源泉이라는 가정 하에서 이룩되었다.

 

2) 本能의 數와 種類

Freud는 본능을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으로 구분하였다. 삶의 본능은 개체의 생존과 종족의 번식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며, 배고픔, 갈증, 性本能 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Freud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삶의 본능은 性本能이며, 초기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이 신체의 어느 부위에나 있는 이러한 욕구에서 오는 것으로 보았다.

 

삶의 본능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형태를 리비도(libido)라고 부른다. Freud는 초기에는 리비도란 말을 단지 性 에너지에 대해서만 썼으나, 그가 후에 動機學說을 수정하고 나서는 리비도의 개념을 넓혀서 삶의 본능 전반에 관계되는 에너지라고 보았다.

 

죽음의 본능 또는 파괴의 본능이 하는 일은 그 사명을 필연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Freud는 모든 사람이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죽기를 원한다고 가정했다.

 

Freud의 죽음의 욕망에 대한 假定은 Fechner에 의해서 이루어진 恒常性 原理(constancy principle)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원리는 모든 생활과정이 無機的 世界의 안정된 상태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Freud는 생명은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안정된 존재가 방해되었기 때문에 有機物은 정지된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죽음의 사태의 최종 목표는 무생물, 즉 無機物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을 뜻한다. Freud는 죽음의 본능은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우주적 힘이 작용하여 생명체를 만들어 낼 당시부터 모든 생물 속에 파고들어 온 것이라고 믿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욕망은 恒常性 原理의 심리적 표현이다.

 

죽음의 본능의 중요한 附隨本能은 공격의 욕구이다. 공격은 자기파괴가 外界의 代替對象物로 돌려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타인과 싸우거나 파괴적인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욕망이 삶의 본능의 세력이나 죽음의 본능을 저지하는 성격내부에서의 다른 장해에 의해서 저지되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은 Freud로 하여금 공격이 性만큼이나 강력한 동기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삶과 죽음의 본능들과 그 부수 본능들은 함께 융합되기도 하고, 서로를 中和시키기도 하고, 또는 서로 대체되기도 한다. 예컨대, 음식을 먹는 것은 배고픔과 음식을 물어뜯고, 씹고 삼킴으로서 만족하는 파괴성의 융합을 나타낸다. 性 本能의 부수 본능인 사랑은 죽음의 본능의 부수 본능인 憎惡를 中和시킬 수 있다. 혹은 사랑은 증오로 대치될 수 있고, 증오는 사랑으로 대치될 수 있다.

 

3) 정신에너지의 分配와 用途

性格의 力動性은 정신에너지가 원초아, 자아, 초자아에 分配되고 활용되는 방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에너지의 量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세 體系간에는 서로 에너지를 사용하려고 경쟁이 생긴다. 따라서 한 體系가 강해지면 전체적으로 새로운 에너지가 추가되지 않는 한, 다른 體系들은 弱化된다. 원래 원초아가 모든 에너지를 점유하고 있으며, 그것은 기초과정이라는 방법으로 반사작용과 소원성취를 위해 사용한다. 이 두 작용은 모두 원초아를 지배하는 쾌락원리에 직접 봉사하는 것이다. 원초아의 에너지는 매우 유동적인 상태에 있는데, 이것은 어떤 한 가지 활동이나 心像에서 다른 활동이나 심상으로 쉽게 轉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본능적 에너지의 轉移可能性은 원본능이 대상물간의 명확한 식별을 할 수 없는데 基因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對象物들을 같은 것처럼 취급한다. 예컨대 배고픈 아기가 잡히는 것은 무엇이나 입으로 가져가려 하는 것과 같다.

 

자아는 그 자체로는 힘의 원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초아에게서 힘을 빌려와야 한다. 원초아에서 전환된 에너지로서 자아가 그 과정을 수행하게 하는 것은 同一視(identification)라는 기제에 의해서 이룩된다. 원초아는 주관적 심상과 객관적 현실과를 구별하지 못한다. 정신적 심상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마음의 세계와 바깥 세계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물에 대한 기억이나 개념과, 존재하는 대상물의 감각적 인상이나 知覺과의 차이를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는 二次過程을 통해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과 바깥 세계에 있는 대상물과를 맞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정신적 표현과 물리적 현실, 즉 마음속에 있는 것을 외부세계에 있는 것과 合致시키는 것을 同一視라고 한다.(p.9의 同一視와 구별 要)

동일시과정을 통해서 에너지는 원초아의 순수한 想像的인 심리적 과정에서부터 자아의 현실적 논리적 관념형성의 과정으로 옮겨지게 된다. 원초아의 경우에는 정신적 상징과 물리적 대상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반면, 자아는 이 구별이 가능하다. 자아는 그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二次過程이 긴장을 훨씬 더 성공적으로 해소시키기 때문에 자아의 추구가 더욱 확고히 형성된다. 이리하여 자아가 점차적으로 에너지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장악은 상대적이어서 자아가 본능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원초아가 그 힘을 다시 탈취한다.

 

자아는 2차과정으로 본능을 만족시키는 일 이외에도 다른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충분히 저장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에너지의 일부는 지각, 기억, 판단, 분별, 추상, 일반화 및 추리 등의 고등정신기능을 발달시키는데 사용하며, 또한 일부는 원초아가 충동적으로 또는 비합리적으로 활동하려고 할 때 그것을 억제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억제하는 힘을 추진하는 힘 또는 追求와 대립시켜 排斥(anti-cathexis)이라 부른다. 만약 원초아가 너무 강압적으로 나오면 자아는 원초아에 대항하며 방어기제를 쌓는다. 한편 이 방어기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에너지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자아의 에너지는 이와 같이 에너지 轉移過程을 통해서 새로운 대상을 추구하여, 흥미, 태도, 기호 등의 모든 계통이 自我 內에 형성된다. 이 자아의 對象追求는 생체의 기본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지 못 할는지도 모르지만, 간접적으로는 연합적인 연계에 의해 기본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물체와 결합된다. 예컨대, 배고픔의 욕구에 대한 에너지는 調理法에 대한 정보를 모으거나, 색다른 음식점에 가거나, 도자기 판매 등에 대한 흥미에 정신집중을 하는 식으로 發散될 수 있다. 이렇게 본능의 원래의 목적과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적은 방향으로 대상추구가 확대되는 것은 본능을 만족시키는 기본적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자아의 효능성이 더 커짐으로서 가능하다. 자아는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잉여에너지를 소유한다.

성격조직의 統轄者인 자아는 성격의 세 체계인 원초아, 자아, 초자아의 統合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한다. 자아의 이런 통합적 기능의 목적은 성격내부에서의 조화를 이룩하여 자아와 환경과의 접촉을 원활하고 효능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동일시의 기제는 또한 초자아에 대한 에너지의 공급을 설명해 준다. 이것도 복잡한 것으로서 다음과 같다. 즉 어린이의 첫 對象追求(object-cathexis)는 부모이다. 어린이에게는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사람이 부모나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대상추구는 아주 어려서부터 깊이 뿌리 박히게 된다. 부모는 또한 訓育者의 역할을 한다. 그들은 어린이에게 그들이 자라는 사회의 道德律, 전통적 가치 및 이념을 가르친다. 부모는 자녀가 옳은 일을 했을 때는 賞을 주고, 옳지 못한 일을 했을 때는 벌을 주는 방법으로 이것을 가르친다. 賞은 긴장을 해소시켜주거나 해소시켜줄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사탕을 준다든지 미소를 준다든지 친밀한 말을 하여 주는 것이 효과적인 보상이 된다. 罰은 긴장을 증대시킨다. 때려주거나 못마땅하게 쳐다본다든지 어떤 즐거움을 금지하는 것 등이다. 이렇게 해서 어린이는 동일시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즉 부모가 설정한 制裁나 禁止에 자기 행동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그가 부모의 理想대로 추종하면 이것이 自我理想이 되고, 금지되는 것에 맞추어 대상추구를 하는 데서 양심이 형성된다. 그리하여 초자아는 어린이가 부모와 동일시함으로서 원초아에 있는 에너지의 저장고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초자아가 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가끔 원초아의 충동과 정반대 되는 일을 한다. 예컨대 道德律이란 원시적 욕구 특히 性慾이나 공격성 같은 욕구를 통제하거나 또는 금지하려는 社會的 企圖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는 사람이고 죄인이란 이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초자아도 때로는 원초아 때문에 부패되는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도덕적인 사람이 죄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공격적 수단을 취할 때, 이러한 경우에 일어나는 공격성은 義憤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난다.

 

일단 본능에 의하여 점유되었던 에너지는 동일시작용을 통해서 자아와 초자아로 흘러 들어가면 추진력과 억제력과의 복잡한 작용이 가능해진다. 원초아는 오직 추진력만을 갖고 있는 데 반하여, 자아와 초자아의 힘은 본능의 목표를 추진시키거나 좌절시키는 데 적용된다. 자아는 원초아와 초자아가 성격의 統合的 테두리 안에서 원활히 움직이고 있는가를 감독해야 하며, 또한 필요한 外界와의 교섭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남겨둘 수 있도록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해야 한다. 만약 원초아가 전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충동적이고 원시적인 특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와 반대로 초자아가 많은 부분을 장악한다면 그 사람의 성격은 현실적인 면보다는 도덕적인 면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한 체계에서 다른 체계로, 또 추구에서 배척으로의 에너지의 갑작스러운 轉移가 일반적으로 일어나는데, 특히 에너지의 분배가 어느 정도 안정되기 전인 10세나 20세 사이에 그러하다. 이러한 에너지의 변화로 해서 역동적인 융통성이 있는 성격을 보유하게 된다. Freud는 심리학이 아주 정확한 과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비관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에너지의 분배에서 조그만 변화가 있어도 어떤 행동의 형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또한 예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격의 역동성에 대한 마지막 분석에 있어서 역동성은 추진력인 追求와 억지력인 排斥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性格內의 모든 갈등은 이 두 가지에서 나오는 힘의 相反性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속되는 모든 긴장은 추진력에 대한 억지력의 방해에서 오는 것이다.

 

4) 不安

성격의 역동은 대부분 개인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외계의 대상과 접촉하고 상호작용 할 필요가 있는 데서 생긴다. 주위 환경은 배고픈 유기체에게는 음식을, 목마른 유기체에게는 물을 준다. 공급의 근원으로서의 역할 외에도 외계는 성격의 운명을 형성하는 또 한 가지의 역할을 한다. 환경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곳이기도 하다. 즉, 만족을 주는 것처럼 위협도 준다. 환경은 쾌락과 긴장해소를 주는 것처럼 고통을 일으키고 긴장을 증진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다.

 

개인은 고통스럽고 파괴적인 외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습관적인 반응을 준비하지 못했을 때 두려워하게 된다. 위협받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자아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외부자극에 압박되면 자아는 불안감에 쌓이게 된다.

Freud는 불안의 유형을 현실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그리고 도덕적 불안 또는 죄의식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기본적인 유형은 현실적 불안(객관적 불안) 또는 외계에 대한 실제적 위협인데, 여기에서 다른 두 유형의 불안이 파생된다.

 

현실적 불안이란 외계에 있는 위험을 지각했을 적에 오는 고통스런 감정적 경험을 말한다. 위험의 지각과 불안의 발생은 어떤 특정된 것이 있을 적에는 두려워하게 된다는 조건반사가 유전되어 내려온 경우와 개인의 생애에서 2차적으로 학습된 것의 두 가지가 있다. 예컨대 우리가 어두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타고날 적부터 내려온 습성으로 이것은 인류의 초기단계에 밤이 오면 언제나 위험물이 나타나고 불을 켜고 손을 쓰기 전에 변을 당하는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밤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단 생동적인 것뿐만 아니라 특히 어렸을 적에 밤에 무서운 일을 겪은 사람의 경우에도 나타난다. 또는 유전적인 것과 2차적으로 습득된 것이 같이 작용해서 어두움의 공포증을 만들기도 한다.

 

신경증적 불안은 본능이 통제되지 않아서 개인으로 하여금 벌을 받을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드는데 대한 두려움이다. 이 신경증적 불안은 본능자체의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본능을 만족시켰을 때 동반되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불안감이 일어나는 원인은 부모나 다른 권위자가 어린이에게 충동적인 행위를 하였을 때 벌을 주는 데서 오는 것이므로 현실에 기초를 둔 것이다.

 

도덕적 불안이란 양심의 두려움을 말한다. 초자아가 잘 발달된 사람은 그가 교육된 道德律에 위배되는 일을 하거나 심지어 생각만 해도 죄의식을 느낀다. 그런 사람은 양심에 속박됨을 느낀다고 한다. 도덕적 불안도 현실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과거에 道德律을 위반하여 처벌을 받은 바 있는 사람은 또다시 그것으로 처벌을 받게 될까봐 항상 두려워한다.

 

불안감의 기능은 사람에게 절박한 위험을 경고하는 일이다. 불안감도 배고픔이나 性慾처럼 긴장상태이기는 하나 내부조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외부적 원인으로 조성된다. 불안감이 일어나면 불안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인가 하도록 동기화시킨다. 그는 위협받는 상태로부터 빠져나오거나, 위험한 충동을 억제하거나 양심의 소리에 따라야 한다.

효율적인 수단으로 다룰 수 없는 불안을 外傷的 不安이라 한다. 불안은 인간을 어린이처럼 무력한 상태로 만든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불안감은 出産에 의한 外傷的 經驗에서 비롯된다. 새로이 태어나는 유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잘 지내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다가 갑자기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맛을 보게 될 때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을 받는 것이다.

 

만일 자아가 합리적인 방법으로 불안감과 대적하지 못할 때는 자아가 비현실적인 것에 의존하게 되는 데, 이것이 자아의 防禦機制(defense mechanism)가 된다.

 

4. 性格의 發達

성격의 발달적 측면을 강조하고, 특히 인간의 기본적 성격구조의 형성에 있어서의 유아기 및 아동기 초기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한 최초의 심리이론가는 Freud일 것이다. Freud는 성격이 5살까지는 거의 완전히 형성되고 그 후의 성장은 대부분이 기본적 구조가 마무리되는 과정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들과의 경험을 토대로 이러한 결론을 얻었다. 환자의 정신을 여러모로 탐색한 결과 신경증은 환자의 어렸을 때의 경험이 토대가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성격은 네 가지 중요한 긴장의 원천에 반응하는 것으로 발달된다. 즉, (1) 생리적 성장과정 (2) 욕구좌절 (3) 갈등 (4) 위협이다. 이상과 같은 원천에서 긴장이 증진되는 직접적 결과로서 사람은 긴장해소의 새로운 방법을 학습하지 않을 수 없어진다. 이러한 학습이 바로 성격의 발달이다.

同一視(identification)와 置換(displacement)은 인간이 좌절, 갈등 및 불안감의 해결을 학습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1) 同一視

동일시는 사람이 타인의 특성을 받아들여 그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은 어떤 타인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서 긴장을 해소하는 것을 학습한다. 어린이는 그 부모가 적어도 초기 아동기 동안에는 全能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동일시한다. 어린이가 성장함에 따라 그는 자신의 현재의 소원에 입각해서 더 성공적이라고 생각되는 다른 사람을 동일시의 대상으로 찾는다. 각 시기에 따라 그 특징적인 동일시의 대상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동일시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타인을 모든 점에서 동일시 할 필요는 없다.

 

그는 보통 그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특징만을 선택해서 받아들인다. 또한 동일시과정에는 상당한 시행착오가 개입되는데 그것은 동일시하려는 대상자에게 있어서 그의 성공에 어떤 점이 기여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검토할 점은 동일시가 그의 긴장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으로, 만약 된다면 그러한 특성은 받아들이고 아니면 포기하는 것이다. 동일시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상상적 특성, 제도, 추상적 개념 또는 무생물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동일시는 또한 잃었던 대상을 되찾는 방법이기도 하다. 죽은 또는 헤어진 愛人과 동일시함으로서 잃어버린 사람을 그의 統合된 성격의 특징으로서 재생시킬 수 있다. 부모에게 거부당한 어린이가 그들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희망으로 부모에게 강한 동일시를 이루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동일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린이는 처벌을 피하려고 부모의 抑止에 동일시한다. 이러한 종류의 동일시는 초자아형성의 기초가 된다.

 

이렇게 하여 인간의 최종적인 성격구조는 그 사람이 일생을 통한 여러 단계에서 얻은 동일시의 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에 대한 동일시는 모든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2) 置換

본능의 최초의 선택대상이 외적 또는 내적 장애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게 될 때, 강한 억압이 없다면 새로운 對象追求가 형성된다. 만약 이 새로운 추구가 또다시 좌절될 때는 또 다른 치환이 일어나고 하여 쌓인 긴장을 해소시키는 대상이 발견될 때까지 이런 과정은 계속된다. 이와 같이 치환을 계속하는 동안에 성격의 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본능의 원천과 목표는 계속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항상 그 對象만이 바뀌게 된다.

 

代替對象(substitute object)은 만약 할 수 있다 해도 본래 대상만큼 만족스럽게 긴장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하며, 본래 대상과 類似性이 적을수록 긴장해소도 적어진다. 무수한 치환으로서도 해소되지 못한 긴장이 쌓이면, 그것은 행동에 대한 영구적 動機誘發力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인간은 계속 긴장해소의 새롭고 보다 좋은 방법을 추구한다. 인간의 불안정성과 함께 행동의 多樣性과 변화가 이런 데서 온다. 한편 성격은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서 본능의 충동력과 자아 및 초자아의 저항사이에 이루어지는 타협에 의해서 어느 정도 安定된다.

 

Freud는 인류문화의 발달이란 원시적 대상선택을 억제하고, 본능의 에너지를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문화적으로 창조적인 방향으로 치환시키는 데서 이루어진다고 지적하였다. 고차적인 문화적 성취를 이룩하게 하는 치환을 昇華(sublimation)라고 불렀다. 이러한 점에서 Freud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그림은 그가 어렸을 때 헤어졌던 그의 어머니에 대한 憧憬의 승화된 표현이라고 보았다. 승화는 완전한 만족을 가져오지 않으므로 어떤 轉移라도 그러하듯이 언제나 긴장이 잔재하게 된다. 이러한 긴장은 신경질이나 초조감으로 나타나는데 Freud는 이를 인간의 문화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불하는 대가라고 하였다.

 

치환이 일어나는 방향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1) 代替對象의 원래의 對象과의 類似性과 (2)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制裁와 禁止이다. 유사성의 요인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두 대상물이 동일시되는 程度를 말하는 것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그림은 어떤 농부나 귀족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가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하고 그린 것이다. 사회는 부모나 기타 권위자를 통해서 일정한 轉移만을 승인하는 바, 예컨대 어린이는 막대기 사탕은 빨아도 되지만 손가락을 빨면 못 쓴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代替 對象追求를 형성하는 능력이 성격발달을 위해서 가장 유력한 機制이다. 성인의 성격을 특징짓는

흥미, 기호, 가치관, 태도, 愛着 등의 복잡한 조직은 치환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정신에너지의 치환이 불가능하여 배분적인 것이 아니라면 성격의 발달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정된 행동양식을 취해야 하는 단순한 기계적 로봇이 될 것이다.

 

自我의 防禦機制

자아에게 부과되는 중요 과제 중의 하나는 개인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며 닥쳐오는 위협이나 위험을 어떻게 다루느냐하는 점이다. 자아는 현실적 문제해결의 방책으로 위험을 극복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안될 적에는 현실을 부인, 왜곡, 위장함으로 해서 불안을 경감시키려 한다. 이런 자아의 노력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인간의 심리에는 많은 방어기제가 작용하고 있는데 주요 방어기제는 억압, 투사, 반동형성, 고착 및 퇴행 등이다.

 

모든 방어기제들에는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1) 현실의 拒否, 僞造 및 歪曲하는 것 (2) 無意識的으로 작용하여 본인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1) 抑壓

Freud는 그의 성격이론을 최종적으로 원초아, 자아, 초자아로 형성되기 전에는 마음을 意識, 無意識, 前意識의 세 영역으로 구분했었다. 그런데 억압은 의식, 무의식, 전의식의 그런 구조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Freud는 그의 성격이론을 개정하였다.

정신역동이론에서 억압(repression)은 대개 否認의 특수한 형태라고 말한다. 억압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그것은 원초적 억압과 본래의 억압이다. 원초적 억압은 본능적 대상선택을 근원적으로 못하게 막기 때문에 한번도 의식계에 떠올라와서 의식화할 수가 없다. 원초적 억압은 원초아의 욕구가 결코 의식화되지 못하고 영원히 무의식 속에 갇혀 있게 한다. 이것은 개인이 태어나기 수만년 이상 인류 역사의 고통스런 경험을 안겨 준 일에서 억압이 시작된다. 예컨대 近親相姦的 慾望은 너무나 강렬한 욕구였기 때문에 그 결과 엄청난 투쟁, 살인, 가정파괴 등이 발생하여 여기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고 철저한 금기가 내려져 아예 의식계에 떠오르기조차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본래의 억압(이후부터는 그냥 「억압」으로 부름)은 위험한 기억, 생각, 지각, 감정, 충동 등을 意識으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여 행동화하는 것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억압은 지나치게 놀라운 대상선택이 배척에 의해서 意識밖으로 추방당할 때 일어난다고 한다. 예컨대 위협이 되거나 불쾌한 기억은 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도록 밀어내든지 또는 눈앞에 전개되어 있는 것을 그것의 知覺이 억압되었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억압은 또한 신체의 정상적 기능까지도 방해한다. 性的 衝動을 두려워하는 까닭으로 性的으로 無能해질 수도 있고, 또는 적대감정의 억압으로 관절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억압은 반대적 배척을 통해 그 과정을 강행하기도 하고 또는 치환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만약 치환이 불안의 再覺醒을 막는데 성공하려면 적합한 어떤 상징적 형태로 變裝되어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억압한 아들이 그의 적대감을 다른 권위의 상징에게 나타낼 수 있다.

일단 형성된 억압은 쉽게 없애 버릴 수가 없다. 사람은 위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야 하는데, 억압이 제거되어 그가 현실을 시험해 보기 전까지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것은 악순환을 한다. 성인이 어린애 같은 두려움을 많이 갖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그러한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2) 投射

원초아와 초자아 때문에 압력을 받고 불안하게 된 사람은 불안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외부세계나 타인에게 있다고 떠넘겨 주고서 자신은 좀 편안해지려고 애쓰는 심리가 있다.

투사는 개인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불안의 원천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신경증적 또는 도덕적 불안감의 본래의 근원이 외계로부터의 처벌에 대한 공포인 까닭에 이것은 쉽게 이루어진다. 투사를 할 때 사람은 “내가 그를 싫어한다”는 대신에 “그가 나를 싫어한다”??


하단로고

CopyrightⒸ국제심리연구원. All rights reserved.

문의전화 카톡아이디 네이버블로그 유튜브 문의전화 카톡아이디 네이버블로그 유튜브